◇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리 대니얼 크라비츠 지음·조영학 옮김/280쪽·1만6000원·동아시아
일단 시비부터 걸고 가자.
이 책, 띠지가 영 그렇다. ‘미국판 스카이캐슬’이란 문구는 별로다. 화제작을 언급하면 관심을 좀 더 끌긴 하겠지. 한데 ‘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는 드라마와 전혀 결이 다르다.
물론 엇비슷한 상황이긴 하다.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그 부촌 말이다. 그곳 명문인 헨리 건(Henry M Gunn) 고등학교 학생들이 연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도 다섯 명이나 기차에 몸을 던져서.
같은 지역 주민이자 심리학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 비극을 파헤쳐 보리라 맘먹는다. 근데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닌단 사실 말고는, 공통점도 접점도 딱히 없었다. 심지어 바깥에서 볼 땐 너무나 번듯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왜 ‘연쇄자살(cluster suicide)’이란 늪에 빠져버린 걸까. 저자는 이 문제의 근원을 ‘사회전염(social contagion)’ 측면에서 접근해 본다.
개념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전염되면서 타인이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을 일컫는다. 보통 전염이라 하면 다소 부정적 뉘앙스가 있는데, 사회전염은 가치중립적이다. 임상역학자 게리 슬럿킨은 이를 ‘좋다’ ‘나쁘다’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할 일은 사회전염은 물론 전염의 힘이 미치는 곳까지 철저히 파헤쳐 사회 안녕에 이바지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전염은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연쇄자살을 놓고 보면, 부촌 특유의 성공에 대한 압박감과 연관이 깊다. 첫 사건이 ‘점화 단서’가 돼 다른 아이의 감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높다. 학업 스트레스나 집단 히스테리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염병은 단순한 치료제로 해결할 수 없을 공산이 크다.
이 책은 바로 이 대목에서 큰 매력을 지녔다. 단순히 형식적인 대안 찾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 정책이나 사회운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실효성을 따진다. 저자는 이게 정답이라 확언하진 않지만 ‘공동체’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택시 운전사에서 바리스타까지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훈련을 받고 사회전염의 ‘단속단’이 되고 징후를 감시하고 필요한 자원을 어떻게 확보할지 알아야만” 이런 참극은 예방과 대처가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는 이런 결론을 오랫동안 공들여 현장을 취재하며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문제를 종합적이고 전체적으로 보는 건 상찬할 일이다. 하지만 ‘개인의 비극’은 분명 각기 다른 이유와 상황을 지녔다. 감정의 전염은 잘 다뤘지만, 각자를 움직인 감정의 ‘변이’는 너무 개략적으로 본 게 아닐는지. 다소 소설처럼 형식을 구성하다 보니 너무 화자의 시선에 매몰되는 느낌도 없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니겠지만. 미국이건 한국이건, 채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청춘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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