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채널A 드라마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오세연·금토 오후 11시)’에서 딸 아진(신수연)이 수아(예지원)에게 했던 말이다. 전업주부 이명선 씨(45)는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릴 수 있는 대사였지만 중년이 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 드라마를 보며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느낀다”고 했다.
16부작인 ‘오세연’이 반환점을 돈 가운데, 드라마 속 대사들을 곱씹어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불륜을 소재로 다뤘지만 일상 속 공감을 주는 메시지가 많기 때문이다. 6회까지 1%(닐슨코리아) 초반이었던 시청률도 26일 7회에 1.8%로 상승하며 시청자의 외연도 차츰 넓어지고 있다.
“남편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진 않습니다. 그저 ‘많이 아팠겠다’ 한마디면 됐을 텐데, ‘많이 힘들었겠다’ 한마디면 충분했을 텐데 자꾸만 마음 한구석이 무너집니다.”
지은(박하선)의 내레이션에 결혼한 많은 여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목에 깁스를 하고 누워 있는 지은에게 남편 창국(정상훈)은 “밥 먹자. 배고파”라고 할 뿐이다. 아내보다는 사랑이, 믿음이라는 앵무새에 푹 빠진 창국은 “제발 (앵무새의)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는 지은의 울부짖음에도 계속 “사랑 엄마”라고 말해 상처를 준다. 당연히 부부 관계도 소홀하다. “언젠가부터 서로에게 고장 난 시계가 된 것 같다. 하루에 한 번도 맞지 않는 느낌이다”라던 지은은 남편과 다른 섬세함을 지닌 대안학교 생물교사 정우(이상엽)에게 ‘메꽃’의 꽃말처럼, 서서히 깊숙이 스며들게 된다.
“너넨 행복해? 근데 죽을 때까지 새장에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니? 그래도 명색이 새라면 하늘을 날아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자신의 처지를 대입해 앵무새를 바라보는 지은처럼, ‘오세연’은 인정받지 못하고 억압된 여성들의 성장 이야기다.
고교 시절 촉망받는 발레리나였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자 꿈을 접고 부유한 출판사 대표 영재(최병모)의 아내가 된 수아도 그렇다. 영재는 “하여튼, 우리나라 아줌마들”, “집구석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가 책을 봐서 뭐 해” 같은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가부장적인 남성의 전형이다. 수아가 잊고 살았던 발레리나의 꿈을 떠올리며 화가 하윤(조동혁)에게 빠져들자 포털 사이트 실시간 채팅창에는 “불륜은 지탄받아야 하지만 남편들 꼴 좀 봐라” 등 시청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남편들이란, 로또 같을까. 한 번도 안 맞잖아. 일생에 한 번도.”(수아)
이처럼 ‘오세연’에는 현실적인 부부 관계의 민낯을 드러내는 대사들이 많다. 영재는 하윤에게 책에 실을 그림을 그려 달라고 요청하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하윤은 수아를 암시하며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전부인 것”이라고 답한다. 중년 남성에게 아내란 존재는 이런 의미일까. 지은은 부부를 “마음은 한없이 멀고, 몸은 이렇게 가까운 관계”라고 여긴다. “내 이야기 같다”, “건전하지 않아도 공감은 된다” 등 웃픈(?) 반응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연출을 맡은 김정민 감독은 “부부들이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돌아볼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불륜 자체보다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특히 여성 시청자에게는 특별한 이야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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