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는 역사 왜곡 문제로 개봉 초반부터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그리고 이 같은 논란은 영화의 흥행에도 영향을 미친 모양새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이 영화는 지난 1일까지 누적 관객 91만 140명(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기준)을 동원했다. 같은 여름 성수기 우리나라 ‘텐트폴’ 영화인 ‘엑시트’와 ‘사자’가 지난달 31일 개봉 첫날 각각 49만 16명, 38만 98명을 동원한 것과 비교하면 개봉 일주일이 지난 영화치고 관객수가 무척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력을 동원해 극화한 영화다. 영화 속 세 주인공 세종대왕(송강호 분)과 승려 신미(박해일 분) 소헌왕후(전미선 분)은 한글 창제를 둘러싸고 각기 다른 욕망을 갖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세종대왕은 유교를 등에 업은 지배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성들의 생활에 유용한 문자를 창제하고자 하며, 승려인 신미는 불교를 배척하는 현 상황을 타개하고 불법이 설파되는 세상을 꿈꾸며 세종대왕과 손을 잡는다. 불교신자인 소헌왕후 역시 신미에게 힘을 실어준다.
‘역사 왜곡’ 이슈 중 가장 크게 논란이 됐던 부분은 한글 창제 과정에서 신미의 역할이다.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에는 신미가 한글 창제 과정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없는데, 영화에서는 그가 산스크리트어 능력을 활용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나온다.
이 영화가 ‘역사를 왜곡했다’ 혹은 ‘세종대왕을 폄훼했다’는 주장을 하는 측에서는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두 가지 구문을 비판의 근거로 꼽는다. 세종 25년(1443)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라는 구문과 문종 즉위년(1450) ‘대행왕(세종대왕)께서 병인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는데’라는 구문이다.
병인년은 1446년을 뜻하는데, 세종대왕이 1443년 한글 창제 후 3년 만에 해설서와 함께 이를 반포한 해다. 즉, 역사서에는 세종대왕이 ‘친히’ 한글을 창제했다고 적혀 있으며, 세종대왕이 신미의 이름을 비로소 알게 된 시기가 한글을 창제한 후였다고 기록돼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신미의 역할과 공을 크게 묘사했던 것과는 다른 지점이다. 또한 한글이 산스크리트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부분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나랏말싸미’ 감독, 신미를 등장시킨 이유…“역사적 공백 활용”
그렇다면 조철현 감독은 왜 이 같은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조 감독은 지난달 29일 밝힌 입장문에서 1443년 조선왕조실록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는 구문 이전에 한글 창제과정이 역사적으로 나와있지 않은 점을 들어 “역사적 공백”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공백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신미는 그 공백을 활용한 드라마 전개에서 세종대왕의 상대역으로 도입된 캐릭터”라고 밝혔다.
글에서 유추해보면 그가 신미라는 인물에 주목한 이유는 실제 신미가 세종대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한글 창제 이후 이를 정착하고 보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신미가 한글, 세종대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만큼, 상상력을 발휘해 한글 창제 전에도 그가 비밀리에 임금의 새 문자 창제 프로젝트에 함께 했다고 가정을 해본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런 가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문학자인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가 제기한 주장이 있다. 정광 교수는 저서 ‘한글의 발명’에서 ‘한글이 고대 산스크리트어나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명으로 창안한 파스파 문자의 체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신미가 훈민정음 창제 후반 과정에 참여해 모음 11자를 만드는 데 공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조 감독은 지난달 15일 ‘나랏말싸미’ 언론배급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광 교수의 ‘한글의 발명’이란 책에서 신미 캐릭터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 한글 창제 과정에 대한 정설은…“세종의 단독 창제”
결국 영화의 내용은 실제 존재하는 학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 같은 주장이 정설과는 다른 ‘이설’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홀로 창제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김무봉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는 뉴스1에 “기록에는 세종대왕의 친제(親制)라고 돼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선왕조실록을 외면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실록에 의하면 세종이 단독으로 창제한 게 맞다”고 밝혔다.
실제 실록의 다른 기록을 보면 임금이 대표자로서 무엇인가를 만들었을 때는 ‘어제’(御製)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훈민정음에 대해서는 특별히 ‘친제’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세종대왕이 단독으로 한글을 창제한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한글문화연대의 논평…“일반적 창작의 자유와는 결이 다르고 위험”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는 ‘나랏말싸미’의 논란이 지속되자 장문의 논평을 발표했다. 지난달 31일 발표한 글에서 한글문화연대는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의 주역을 신미대사로 그리고 있는데, 이 영화는 이런 가정을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감독의 소신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일반적인 창작의 자유와는 결이 다르고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표현의 근거는 역시 조철현 감독이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발언이다. 당시 조 감독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을 설명하며 “이 영화는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영화일 뿐이라는 자막을 넣었다. 나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일 수 있으나 그 누구도 역사적 판단 앞에서는 겸허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은 마치 감독이 자신이 영화를 위해 채택한 한글 창제설을 진실이라 믿는 것처럼 비쳐졌고, 일부 관객들의 반발을 샀다.
◇ 정설이냐, 상상력이냐
결국 ‘나랏말싸미’는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을 벗어난 상상력으로 인해 곤경에 처했다. 창작물에는 상상력이 허용되지만 역사적 사실이라고 인정되는 부분까지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쪽의 입장이다.
한글문화연대는 “역사의 줄기까지 허구로 지어내는가 세부 사정만 허구로 그려내는가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 경계가 어디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역사의 줄기마저 허구로 지어내는 순간 우리는 그러한 창작이 심각한 역사 왜곡을 저지를 수 있음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아닌 감동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또한 ‘나랏말싸미’가 전반적으로 성군이었던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면과 위대한 면을 모두 드러내는 내용을 그린 만큼, 영화가 역사를 왜곡했다는 주장은 과민한 반응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무봉 교수는 “학자가 아닌 작가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목적은 감동을 주기 위한 것이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다”며 “‘나랏말싸미’의 경우 신미 스님이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관여했다는 근거가 없지만 정착시키고 보급하는 일에 기여한 바가 크기에 거기까지 확대 해석해 영화를 만든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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