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이 바로 나!”…건축 환경이 당신의 삶을 바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3일 1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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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혁명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 지음·윤제원 옮김
464쪽·2만8000원·다산사이언스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이다’는 말이 있다. 먹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의 건강과 체질을 설명할 때 쓰곤 한다. 이 책은 “당신이 사는 장소가 바로 당신이다!”라고 외친다. 영국의 총리 처칠이 1943년 독일군 공습으로 무너진 국회의사당 건물을 복원하면서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간다”고 한 명언과 맞닿아 있다.

실제로 어린 시절이나 성인이 돼 첫 출근 날을 추억할 때 꼭 장소에 대한 기억을 동반한다. 이것은 뇌에서 장기 기억을 형성할 때 가동하는 세포와 공간을 찾는 세포가 같은 부위에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삶의 90%를 인공 건축물에서 보낸다. 아파트, 사무실, 학교, 도로, 지하철…. 그래서 건축 환경이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화두는 그 연장선에서 ‘건축에서 디자인이 왜 중요한가?’다. 이 질문에 전문가들도 답을 하라면 쩔쩔맨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건축평론가인 저자는 뇌과학과 인지신경심리학계에서 새롭게 발견된 지식을 통해 건축 환경이 인간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왜 천장 높이가 2.4m인 방보다 3.6m인 방에서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될까? 학생들은 왜 자신이 학습한 교실에서 시험을 볼 때 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까? 그는 인지과학과 신경과학계에서 밝혀낸 새로운 사실들을 건축과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집중한 것은 삶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체화된 인지’의 작용이다.

건축가 알바르 알토는 자신의 고향 핀란드 북부에 건물을 만들면서 층계바닥을 밝은 노란색으로 칠하고 금속 난간은 목재로 감쌌다. 사람들이 샛노란 계단에 나무 난간이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따스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햅틱’ 인상은 우리가 마음속으로 촉각 시뮬레이션을 하게 만드는 시각 자극으로, 단지 대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감각 운동을 일으킨다.

서구 문화에서는 17세기 데카르트가 발전시킨 인지 이론이 자리 잡았다. 인간의 감각으로 받아들인 데이터를 해석하는 인지가 신체와 독립적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최근 과학적인 연구 결과 ‘인지’는 마음과 신체, 환경의 세 요소가 동시에 결합해서 이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마음과 육체는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것.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노모를 노인 요양시설이나, 친척 집으로 옮길 것을 고민할 때 가능하면 옮기지 않는 편이 낫다고 조언한다. 오랜 세월 함께한 집을 떠난다는 ‘인지적’ 경험이 ‘신체’ 건강에 해롭게 작용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인간의 신체와 뇌는 특히 자연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자연 풍광을 20초만 접해도 빨라진 심장 박동이 진정된다. 담낭 수술을 받은 뒤 낙엽수가 보이는 병실에 머문 환자는 벽돌이 보이는 병실에서 머문 환자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저자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맨해튼의 월드트레이드센터, 프랑스의 아미앵 대성당,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등 세계 최고와 최악의 건물, 도시경관을 분석한다. 서울의 청계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사동 쌈지길, 북촌 한옥에 대한 단상도 흥미롭다. 그는 “11㎞가 넘는 청계천을 따라 눈높이로 쌓아올린 돌담은 인간에게 풍부한 물질적 경험과 자극을 주는 휴먼스케일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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