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에겐 장난감 가게가 참새 방앗간이다. 아이도 없는데 틈만 나면 장난감 가게를 어슬렁거린다. 인기 아이템은 뭔지, 어떤 신상이 들어왔는지,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어떻게 노는지 관찰한다. 식당에서 동영상을 보는 아이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영상 내용과 보는 방식을 가자미눈으로 살핀다. 유튜브 채널 ‘토이푸딩’의 김세진 대표(40) 얘기다.
토이푸딩은 단일 채널로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6일 기준 구독자수는 2567만 6500여 명, 누적 조회수는 148억 만 뷰. 2017년 SM엔터테인먼트와 가수 싸이에 이어 세 번째로 1000만 구독자의 상징인 다이아버튼을 받았다. 2000만 명은 처음으로 돌파했다. 소셜블레이드 기준 세계에서 35번째로 누적 조회수가 높다.
토이푸딩에는 장난감과 손만 나온다. 자극적인 장면도 없다. 주인공은 인형 ‘베이비 돌리(BABYDOLI)’. 카메라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요리 하고 아기 인형을 돌보는 베이비돌리의 모습을 가만히 비춘다. 인형이 인형 놀이를 하는 역할극인데 어른이 보기에도 꽤 재미있다.
5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만난 김 대표는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 움직임이 느리다. 정서에 좋은 배경음악을 깔고 효과음을 극대화해 오감 만족에 공을 들였다. 알록달록한 파스텔톤 화면에 음악이 좋아 어른 시청자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최근 ‘나의 첫 유튜브 프로젝트’(다산북스·1만6000원)를 펴냈다. 채널을 키우면서 겪은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담은 실용 가이드에 가깝다. 책은 유튜브의 전반적인 과정을 아우르지만 몸으로 겪은 조언도 풍부하게 담겼다. 인기 키워드를 선점하는 방법과 검색 결과 상위에 콘텐츠를 노출시키는 지표를 알려준다.
“예기치 않게 채널이 커지다보니 많은 분들이 노하우를 물어오셨어요. 개별적으로 알려드리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워 책을 펴내면 어떨까 했습니다. 잘 만든 콘텐츠에 전략을 더해야 성공 가능성이 커지는 것 같아요. 채널마다 상황이 다르니 참고삼아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가 유튜브를 시작한 건 2014년. 창업해 10년 간 이끌던 소셜커머스 업체를 접은 때였다. 그 시절 자주 유튜브를 했다. 해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 유튜브에 익숙했고 한때 PD를 꿈꿨을 만큼 영상에 관심이 많았다. 게다가 그는 희귀 장난감 수집가. 장난감 채널이라는 다섯 글자가 마음을 잡아끌었다.
“당시 국내 키즈 채널은 전무했어요. 창고에 흰색 시트지를 바르고 휴대폰으로 촬영을 시작했죠. 사업에 실패했던 때라 4,5시간씩 자면서 하루 3개씩 영상을 올렸습니다. 방과 후에 영상을 집중적으로 올리고, 방학에는 동영상 개수를 늘리며 노출에도 신경을 썼어요. 좋아하는 것(장난감)과 잘하는 것(사진 찍기)가 유튜브를 만나 재밌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을 오래된 순으로 정렬하면 지금과 사뭇 다른 영상이 뜬다. 자동차와 로봇 같은 남아 장난감이 더 많다. 채널이 커지자 전략의 중요성을 직감했다. ‘여아’와 ‘글로벌’을 성장 전략으로 정했다. 남아 장난감은 유행 주기가 짧고, 해외 전체에선 여아 시장이 더 컸다. 채널 충성도를 위해 베이비돌리라는 인형을 제작했다. 애니메이션도 만들었다.
“한국의 양배추 인형과 일본에서 인기몰이를 한 멜짱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뽀로로 타요 등 업체에서 개별 채널을 개설한 뒤로는 베이비돌리만 등장시키려 해요. 앞으로 나나베어와 베이비킹 호랑이 등 캐릭터를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현재 보유한 장난감은 10여 평 방에 꽉 들어찰 만큼 많다. 장난감 구입비용은 월 1000여 만 원.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구입한다. 촬영은 전쟁터 같다. 직원 20여 명이 팀별로 모여 이야기를 짜고, 스토리 보드를 만든 뒤, 촬영을 한다. 토이푸딩 스토리작가 김진화씨(38)는 “5시간 정도 촬영해 5분~10분으로 편집을 한다. 장난감 각도와 손동작까지 세심히 살피다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고 했다.
월 수익은 얼마나 될까. 소셜블레이드는 1000회 광고 노출 당 가격을 0.25~4달러로 계산한다. 시청 국가와 시청 지속 시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그는 누적 조회수(148억 만 뷰)에 비춰 짐작해달라고 귀띔했다. 지난 5년 간 벌어들인 매출이 100억은 훌쩍 넘는 셈. 유튜브 광고수익분 아니라 중국 쪽 플랫폼의 수익도 상당하다. 수입원 종류가 다양해졌지만 비용 지출도 늘었다. 직원 20여 명의 인건비에 연구 개발비 및 신규사업 발굴에대한 지출도 상당하다. 그는 “단기간에 성공했지만 그 굴레가 상당하다.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이라며 뜸 들이다 말을 이었다.
“순위가 뜨니까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이 큽니다. 하루라도 내려놓으면 어느 순간 순위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새벽이든 언제든 수시로 사이트를 들여다봅니다. 구글에서 상위 팀들을 모아 분기별로 자리를 마련하는데, 비슷한 고민들이 많습니다. 모든 일이 어렵지만 유튜브도 경쟁의 측면에서 쉽지만은 않아요. 물론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유튜브는 계층 사다리가 무너진 요즘 새로운 부의 추월차선으로 각광받는다. 부정적 시선도 있다. 손쉽게, 운 좋게, 자극적인 콘텐츠로 성공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키즈 채널은 특히 아이들에게 유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김 대표는 “자극적인 영상은 일시적이고 오래 가는 건 뚝배기 같은 영상”이라고 했다.
“유튜브가 성인들에겐 포털이지만 아이들에겐 하나의 문화가 됐어요. 음성 검색으로 접근이 쉬워졌죠. 이젠 허용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고민할 시점인 것 같아요. 최대한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교육 전문가가 영상을 구성해요. 따라 해도 좋을 역할 놀이와 단어(과일, 숫자, 음식 등)를 나열해 언어를 배우도록 하는 식입니다.”
유튜브는 변화무쌍하다. 새로운 강자들이 쉼없이 등장한다. 한숨이라도 돌릴라치면 순위가 뒤바뀐다. 최근엔 ‘코코멜론’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비장의 무기는 3D. 토이푸딩도 현재 운영하는 2D 만화를 3D로 바꿀 계획이다. 주 시청 연령층도 높이려 한다. 그는 “전세계 아이들이 베이비돌리로 즐거움을 얻고, 학습하고, 또 오프라인에서 베이비돌리로 놀이하는 장면을 그려본다”고 했다.
사회적 영향력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우선 장난감 기부와 재능 기부부터 시작했다. 최근 경찰청의 어린이 안전 교육 영상을 무료로 제작하기로 했다. 향후 유튜브 컨설팅을 계획하고 있는데, 공공기관은 무료로 도와주려 한다.
무시무시한 경쟁의 세계에서 선두에 서 있는 김 대표는 유튜브로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성공한 건 실감이 안 나고요. 얻은 건 팀원들, 잃은 건 건강과 자유. 24시간 모니터링 하면서 조회수 추이를 살펴야 하니까요. 직업으로서 유튜버요?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컨텐츠를 생산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면 도전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