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조세형 씨(40)는 지난 2년간 책을 431권 펴냈다. 법령집 시리즈가 430권, 에세이가 1권이다. 출판사는 모두 ‘부크크’. 원고를 올리면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책을 찍어내는 ‘자가 출판’ 플랫폼이다. 88권이 팔린 책(‘국제선박항만 보안법’)도 있지만, 절반은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
조 씨는 자동차 관리법을 공부하려다 마땅한 책이 없어 직접 책을 출간했다. 그는 “대부분 법령집은 광범위한 분야를 하나로 묶어서 두껍고 가격도 비쌌다. 필요한 부분만 따로 떼 내 책으로 만들기 시작한 게 시리즈로 이어졌다”고 했다.
최근 원고만 올리면 편집부터 디자인까지 뚝딱 책으로 만들어주는 자가 출판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다. 201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비스를 선보인 교보문고 ‘퍼플’을 비롯해 2014년 문을 연 부크크, 최근 시장에 진출한 ‘북팟’ 등이다. 아직 전체 규모는 작지만, 자가 출판 시장은 해마다 성장률이 가파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2012년에 비하면 올해 매출 규모는 10배 정도 성장했다”고 했다.
홈페이지에서 원고를 업로드하고 판형, 종이 재질, 디자인을 선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5∼10분. 제작 비용은 무료, 권당 책 가격은 1만 원 내외다. 기존 출판 시스템과 달리 주문이 들어오면 책을 제작한다. 책이 팔리면 저자는 10∼35%를 인세로 받는다. 한건희 부크크 대표는 “자가 출판을 통하면 재고 및 인쇄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또 최소 단위 없이 1권이라도 제작이 가능해 출판 서적의 다양화를 꾀할 수 있다”고 했다.
각 플랫폼에 올라오는 원고는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일단은 에세이나 소설, 팬픽과 작은 시장을 노린 실용서와 교재가 대세를 이룬다. 하지만 경찰행정법을 다룬 ‘곧경감’이나 ‘헤어디자이너의 인턴 일기’, 레몬나무 키우는 법을 담은 ‘레몬나무 키우기’ 등 수요가 작아 기존 출판사에선 펴내기 힘들었던 책도 인기다. 겨루, 어비북스, 쿰라이프게임즈 등 작은 출판사도 플랫폼의 단골 고객. 최근에는 여행서, 학원 교재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라고 한다.
책의 마케팅과 홍보는 필자가 직접 해야 한다. 퍼플은 주요 온라인 서점 7곳에, 부크크는 자체 온라인 서점과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에 책을 유통한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책을 판매할 수 없다.
자가 출판으로 팬픽을 여러 권 출간한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자가 출판은 개인에게 매력적인 출판 통로”라고 말했다.
“인지도 없는 개인이 출판사 문을 두드려 계약을 맺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죠. 자가 출판은 막막한 출간의 기회를 쉽게 열어줍니다. 책이 다소 엉성하고 내용도 날것에 가깝지만 출판사의 개입 없이 오롯이 나를 드러낼 수 있어요.”
막 활기를 띠기 시작한 자가 출판은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조상현 북팟 상무는 “독서 인구가 줄고 있지만 콘텐츠의 힘은 강해지고 있다. 개인의 표현 욕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1인 출판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조세형 씨는 “자가 출판을 통해 창작 욕구를 고급스럽게 해소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자기만족이 아닌 독자가 필요한 부분을 담아낸 책이 많아져야 자가 출판 시장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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