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을 찾아서라면 부러 시간을 내어 먼 길을 마다 않고 돌아다니는 ‘역마살’이 언제부터 생겼을까 생각하니 햇병아리 전공의 시절부터였음이 분명합니다. 수련 기간 몇 년 동안 교수님들은 식도락의 세계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모래내에서 성북동까지 장안의 유명 식당들을 섭렵하며 논문 지도에 버금가는 ‘미식 지도’를 받았습니다. 설렁탕, 삼계탕, 칼국수, 보신탕, 냉면, 등심구이…. 그중에도 곰탕은 을지로 하동관을 주로 찾았는데, 당시에도 식비를 선불로 내야 하고, 손님들은 종업원 지시를 따라야 하는 ‘을’의 신세였습니다. 그룹회장이 오든, 대학총장 혹은 일용노무자가 오든 차이가 없던 곳으로 기억합니다.
곰탕이란 말은 광복 이후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곰탕의 ‘곰’은 분명 ‘고으다’ 혹은 ‘고다’에서 온 것이고, 이는 식재료를 푹 삶거나 달여 진액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곰탕은 고깃국 전체를 대표할 테고 설렁탕, 꼬리곰탕, 소머리국밥, 고기국밥 등은 곰탕의 부분집합이라고 해도 무방하겠군요. 서양 음식에서도 ‘부이용’이라는 육수농축액과 ‘콩소메’라는 맑은 고기육수가 있습니다. 곰탕육수처럼 표면에 뜨는 기름기를 정성껏 제거해 맑은 육수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맑은 콩소메에 밥을 말면 서양식 곰탕이 되지 않을까요? 밥 대신 쌀국수를 넣고 생선 소스와 고수를 추가하면 베트남 쌀국수로 변신할 수도 있고, 차가운 콩소메에 메밀국수를 말면 냉면이 될 것입니다. 물론 어떤 고기국물이든 요리사의 영혼까지 푹 고아야 제맛이 나옴은 당연하겠지요.
곰탕이 대표적인 곳으로는 나주, 현풍, 영천, 진주, 서울 등이 있습니다. 황해도 해주 역시 곰탕이 유명하다지만, 평양냉면집의 온반도 널리 보면 곰탕 계열이고, 함경도 음식인 가릿국도 곰탕 가문의 일원일 테지요.
과거에 들불처럼 번졌던 ‘불타는 조개구이’나 ‘안동찜닭’의 부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육개장 붐이 일더니, 최근엔 곰탕집 간판이 눈에 뜨입니다. 대개는 프랜차이즈 형태이지만, 독자적으로 서울 하동관이나 나주 하얀집의 아성에 도전하는 곳도 꽤 생겼습니다. 곰탕집 특유의 고기 누린내를 잡아 깔끔하게 탕을 내는 곳도 있으며, 위생과 친절로 무장까지 했으니 수육 안주만으로도 소주 몇 병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집니다. 뒷마무리로 양지 수육에 내포가 넉넉하게 들어간 곰탕을 선택하면 다음 날까지 속이 든든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화인지는 모르겠으나 곰탕을 영어로 ‘bear soup’이라 쓴 곳이 있었다지요? 든든한 곰탕 한 그릇은 웅담이 들어간 실제 ‘bear soup’ 못지않은 건강식임을 말하려 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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