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장난감을 사면서 스스로를 자책한 이유…[변종국 기자의 슬기로운 아빠생활]<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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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9월 19일 15시 44분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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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째가 블록을 좀 다룰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난 것 같아 블록을 사러 장난감 가게에 갔다. 뭔 블록이 이리도 종류가 많은지…. 이것저것 구경하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블록을 사가지고 온 아빠를 보며 신나할 아이를 생각하며 꼼꼼하게 블록을 살폈다. ‘음 이건 너무 작아서 아직은 조립이 어렵겠군.’ ‘ 이건 너무 쉬울 것 같은데?’ ‘이건 너무 조잡해.’ 모처럼 아빠 노릇 하겠다며 무척이나 고심했다.

그러다 ‘와! 나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블록이 아직도 있네.’ ‘별별 레고가 다 나오는 구먼’ 이라며 잠시 추억에 잠겨보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블록을 선택함에 있어 가격표가 눈에 안들어 온다고 하면 거짓말일테다. “뭐 이리 비싸” 라고 중얼거린다.

“이게 이 가격이야?”라고 말하며 휴대전화로 온라인 판매가격을 살핀다. 배송비도 따져보지만, 오프라인 매장이 조금 비싼 것 같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데 들어간 시간과 노력, 아이의 함박웃음을 빨리 볼 수 있다는 기대 비용 등을 종합해 ‘그냥 여기서 사가자’는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자기 아이에게 사주는 장난감임에도)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고자 하는 깐깐한 소비자로서의 자세는 계속 유지했다.

나는 분명 블록의 기능과 성능, 아이에게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한다고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격만’ 비교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기자의 신분으로 돌아와 나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취재해본다. 질문을 던진다.

“너라는 존재가 언제부터 이렇게 가격 비교에 꼼꼼했던가?”

“너라는 존재가 어제 술 한 병, 커피 한잔 덜 마셨더라면 장난감 소비에 사용할 현금 가용 범위가 더 넓어지지 않았겠는가?”

“너라는 존재가 인적 네트워크 유지 비용으로 돈을 지불할때도 이렇게 합리적인가?”

“너라는 존재가 만든 네 자식에게 사주는 장난감인데도 꼭 스크루지급 구두쇠로 빙의를 해야 겠는가?”

스스로가 너무 쪼잔해 보였다. “그래 내가 왜 몇 천원 가격을 비교 하고 있는 거지? 쪼잔하게?” 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처음부터 눈여겨 봤던 블록을 골랐다. ‘처음부터 눈여겨봤다’는 것 자체가 벌써 가장 최적화된 가격을 자랑하는 블록이었다는 의미가 담겨있으리라.

자식에게 넓은 풍채를 자랑하는 아빠가 돼야겠다고 다짐하며 장난감 가게를 나온다. 나오다가 장난감 하나를 더 사줘야겠다는 대인배가 된다. 태엽을 감으면 물에서 물장구를 치며 이동하는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다. 물놀이 할때 주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개 가격은 2000원. 종류는 오리와 개구리가 있었다.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오리를 집어들었다. 집에와서 아내에게 “이거 2000원이야. 오리와 개구리가 있었는데 오리를 골랐어!”라고 말했다. 오리가 더 이뻐서 골랐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미였다. 그런데 아내의 한마디에 나는 또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냥 두개 다 사오지”

아뿔사. 나는 분명 ‘쪼잔하지 않은 아빠가 돼야겠다’고 다짐하며 ‘장난감 하나를 더 사가겠다’고 다짐한 와중에도 ‘쪼잔한 아빠’였던 것이다. 왜 2개를 다 사올 생각을 못했을 까? 2개를 다 샀어도 4000원인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1잔 가격도 안 되는데…. 담배 한 갑 가격보다 싼데…. 숙취 해소음료 보다도 더 싼데…. 왜! 왜! 나는 왜 2개를 살 생각은 안했을까?

물론 아빠들이라고 다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기분에 따라서는 시원하게 장난감을 질러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 너무 찌든 나머지 종종 아파트 분리수거 함 앞에 나뒹굴고 있는 장난감들을 보면 “어후 저게 얼마 짜린데”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든다. 글을 쓰고 보니 너무 ‘찌질해’ 보인다. 원래 이렇게 않았는데 말이지. 우리 가족의 미래 재정을 위한 아빠들의 산수 계산이라고 생각하고 웃어 넘겨주시길. 가족들에게 나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이 미안할 뿐이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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