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는 여러 인칭으로 서술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을 쓸 수 있는 방식은 아주 얇고 좁은 길인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소년의 이야기를 다 하면서 뭔가 진실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어려웠다. 3~4개월 자료를 계속 읽고 거의 포기했던 순간, 좁은 길을 따라서 써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장부터 6장까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누가 화자가 될 것인지 등에 대해 정리를 다하고 나서부터는 이상하게 빨리 써졌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이 소설이 날 착취해서 내 생명과 자신을 맞바꾸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썼던 것 같다.”
소설가 한강(49)은 7일(현지시간) 열린 ‘2019 예테보리도서전’ 세미나에서 소설 ‘소년이 온다’에 얽힌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한 작가는 진은영(49) 시인과 함께 ‘사회역사적 트라우마’를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전면으로 다룬 소설이다.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간의 잔혹함과 악행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졌다.
한 작가는 “‘소년이 온다’는 그 전까지 썼던 소설들과 달리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어 큰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개인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는 어떤 한 여자의 정확히 꿰뚫을 수 없는 내면을 따라가는 작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소설도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우리는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분리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진 시인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방식으로 시 쓰기를 즐겨했던 작가”라며 “2009년 이후 여러 활동을 통해 거리나 광장으로 나왔다. 그 경험이 시 속에 반영됐다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내 연구실에 종이와 연필이 가득하다.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것을 안전하게 생각해왔는데, 종이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문득 궁금해졌다. 종이를 만드는 노동자에게 무슨 일이 생겨났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종이를 만들다가 종이 만드는 기계에 팔이 끌려 들어가고 목숨을 잃고 끔찍한 일이 많다.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하얀 종이 안에도 한국 노동의 현실이 들어와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거시적인 사건이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모든 사물이 사회적인 사건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한 작가는 소설 ‘흰’이 “스웨덴에서 하얀 책이라고 번역이 됐다”고 전했다. “일단 한국어에는 흰색을 말하는 두 개의 형용사가 있다. ‘흰’ 하고 ‘하얀’이라는 게 있다. 흰은 그 안에 좀 더 슬픔이 있고 삶과 죽음도 있고 바랜 것 같기도 한 하얀색이다. 하얗다는 건 순수한 색깔로서 하얀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장례식이나 죽을 사람을 기릴 때 입는 소복은 하얀 옷이라기보다 흰 옷이다.”
“이 책은 흰 색깔이다. 번역을 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하얀 책이라는 제목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흰 색깔의 사물들이 무엇이 있는지 적어내려가다 보니 배내옷, 눈, 빛, 각설탕, 진눈깨비, 눈보라, 손수건, 백발, 수의 등 모든 것들이 아주 근원적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것들을 가로지르는 것이 흰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주빈국으로 참가한 예테보리도서전은 29일까지 열린다. 한국 주빈국 행사는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한국문학번역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네이버도 협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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