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학에 조예가 있기는커녕 오늘의 날씨도 체크 안 해 비를 맞기 일쑤이지만 나비효과는 믿는 편이다. 이 얘기를 하려면 영국 팝 가수 스팅(본명 고든 섬너)을 불러와야 한다.
스팅은 영국 북부 뉴캐슬 인근의 작은 도시 월젠드에서 1951년 태어났다. 월젠드는 조선업으로 유명했다. ‘유명하다’가 아니다. 과거형이다. 1960, 70년대 세계 최강을 자랑한 ‘스완헌터 조선소’ 인근에서 열리는 거대한 배의 진수식에 영국 여왕이 참석하는 광경을 보며 소년 스팅, 아니 섬너는 설명하기 힘든 자부심과 설렘을 느끼며 자랐다. 스팅 자서전에 다 나오는 얘기다.
월젠드는 1980년대로 접어들며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걷는다. 지구 반대편의 작은 나라, 한국의 조선업이 급성장하자 영국의 선박 수주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조선소 건물과 그 건물만 한 배가 위용을 자랑하던 고향이 폐허 비슷하게 변해가는 과정을 스팅은 봤다. ‘Shape of My Heart’의 쓸쓸한 선율에 어쩌면 그때 잠재한 서글픔이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묻어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2013년에 스팅은 심지어 ‘The Last Ship(마지막 배)’이란 앨범을 낸다. 조선업으로 유명한 고향의 흥망성쇠를 담은 음반. 이방인의 심정을 다룬 ‘Englishman in New York’에서도 정장 깃 추켜세우듯 세련됨을 잃지 않던 그가 환갑이 지나 낸 이 앨범에서야 처음 영국 북부 사투리를 노래에 넣었다. 당시 10년간 신곡을 못 쓰며 절필 증후군에 시달리던 그에게 한 줄기 빛처럼 새 영감을 준 것이 바로 유년의 기억이었기 때문. 이듬해에는 이 노래들을 뼈대로 한 뮤지컬 ‘더 라스트 십’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기에 이른다.
스팅이 2년 만에 내한한다. 5일 서울에서 공연한다. 몇 번째 계속 서울 공연이다. 이젠 지방 무대에 설 때가 됐다. 울산, 경남 거제…. 폐조선소는 문화공간으로 바꾸고 뮤지컬 ‘더 라스트 십’의 한국 초연을 하는 것은 어떨지…. 나비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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