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을 여행하다 큰 강이나 저수지를 만나면 인근 어디에선가 어죽이 끓고 있을 것 같다. 작은 민물 잡어를 손질한 뒤 비린 맛이 없어지도록 시간을 들여 푹 고아낸다. 그리고 잔가시 등을 체에 곱게 거르고 집고추장이나 집된장을 넣어 국물을 완성시킨다. 국수는 먹기 직전 국물에 넣어 한소끔 끓여주면 된다. 믹서 같은 기계로 억지로 갈아 만드는 탕이 절대 아니다.
어죽을 처음 먹는 사람이 이를 대면했을 때 표정은 대부분 썩 밝지가 않다. 요즘 음식처럼 세련되지도 않고 죽도 탕도 아닌 걸쭉하고 불그죽죽한 국물 속에 국수가 말아져 있으니 비주얼이 썩 당기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어죽을 한 숟갈 떠 진한 국물을 맛보고 나면 흐뭇한 만족감이 온몸에 퍼진다. 국수면발의 녹말과 어우러진 탕국물은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히 매콤하고 농후한 수프 같아 편안하게 후루룩거리다 보면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그동안 저수지나 큰 강의 지류가 있는 오랜 어죽 식당을 여러 곳 다녀봤다. 금강 지류의 식당 한 곳은, 지금의 여사장이 시집와 보니 남편은 노름에 빠져 있고 가난한 집안 살림에 많은 시동생을 건사해야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단다. 그래서 궁리 끝에 집 근처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끓이기 시작했는데, 그 어죽 맛이 깊어 점점 알려지며 돈을 벌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남편도 점차 물고기 잡는 어부가 돼 식당 조력자가 됐고 건전한 생활의 일꾼으로 거듭나게 됐다고 한다.
한번은 북한강 인근의 매운탕 가게 자문역을 맡은 적이 있었다. 식당 인근 강가에 자전거족이 많기에 ‘혼밥’으로도 좋은 뚝배기 어죽을 제안해 만들었다. 나름 호평을 얻어 갈 즈음 40여 명의 경남지역 단체손님에게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들었다. 어죽 자체는 맛있는데, 방아잎은커녕 제피(초피) 가루 없이 후춧가루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건 어죽이 아니라며 불평을 쏟아낸 것이다. 작은 한반도지만 어죽 하나만 보더라도 참 다르게 먹는구나 싶었다. 어죽, 어국수, 어탕국수, 생선국수 등 부르는 용어 또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늘비식당’은 지리산에서부터 흘러온 경호강의 맑은 물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파는 아들과 동네에서 손맛을 알아주던 어머니가 하는 경북 산청의 오랜 어죽집이다. ‘선광집’은 금강을 끼고 있는 충북 옥천군에서 2대째 하는 생선국숫집으로 큰 대접에 나오는 깔끔한 고추장국물이 여성스러운 느낌이다. 이곳에서는 어죽을 생선국수라 부른다. 어죽을 서울에서는 맛보기 쉽지 않은데 합정역 인근 ‘지리산어탕국수’에서는 칼칼한 어탕국수를 판다. 어죽에 소주 반주를 하는 아저씨들도 적잖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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