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예쁜 샛노란 산국(山菊)이 꽃망울을 확 터뜨렸다. 감나무 아래 흙에는 잘 익은 단감이 떨어져 주황색 물감으로 색칠을 해놓았다. 작살나무엔 진주구슬 같은 보랏빛 열매가, 산사나무엔 붉은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최순우 옛집’의 툇마루에서 바라본 뒤뜰엔 가을색이 완연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 선생(1914∼1984·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작고하실 때까지 돌과 나무를 가꾸며 살았던 운치 있는 한옥이다.
오랜 향나무와 노송이 서 있는 앞마당과 사랑채를 지나면 이 집의 백미인 뒤뜰이 나타난다. 참나무 산수유 모과 목련 매화 등 고인이 직접 가꿨던 나무와 화초 사이로 문인석과 이지러진 돌확,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긴 괴석, 해학적인 얼굴의 벅수까지…. 대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달빛을 감상하고,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사색할 수 있는 선비의 정원이다.
이날 ‘혜곡의 뜰’ 강의를 한 안선영 생명다양성재단 책임연구원은 “전통한옥의 정원은 ‘차경(借景)’이란 표현을 쓴다. 1930년대 지어진 근대한옥이지만 최순우 옛집은 주변의 산과 나무의 풍경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온 대표적인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최순우 옛집이 귀한 이유는 정원에 도토리나무가 있다는 겁니다. 원래 정원엔 비싸고 귀한 나무를 심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참나무를 잘 심지 않아요. 최 선생은 진달래 소나무 대나무 머위 벌개미취 옥잠화 같은 우리 산하에서 자라는 친근하고 소박한 나무와 꽃, 풀을 심고 키우며 정원을 즐기셨습니다.”
실제로 뒤뜰 가득히 노랗게 물들이는 들국화는 1960년대 초반 최 선생이 전남 강진에서 고려청자 가마터를 발굴할 때 길가에서 한두 그루 캐온 것이 퍼진 것이라고 한다. 매화나무는 1979년 도예가 노경조 씨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인사차 들렀을 때 최 선생과 함께 종로 화훼시장에서 사서 심은 것이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사연이 가득하다.
선생이 직접 쓴 ‘두문즉시심산(杜門卽時深山·문을 닫으면 이곳이 깊은 산중)’이란 현판처럼 집 안 마당에 들어서면 도심의 소음이 딱 끊기고 고요한 세상으로 순간 이동한 느낌을 받는다. 사방탁자, 문갑 등으로 정갈하게 꾸며 있는 안채 사랑채는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가 살았던 집처럼 작지만 결코 모자라지도 않는 공간이다.
이 집은 선생의 사후에 매각돼 빌라로 재건축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2004년 4월 시민들과 지인들이 모금 운동을 통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문화유산 1호’로 일반에 공개했다. 이 집에는 요즘 툇마루에 앉아 조용히 가을을 즐기고 가는 시민들이 많다. 9일에는 뒤뜰에서 리코더 연주로 ‘음악이 꽃피는 한옥’ 콘서트가 열렸고, 안채와 사랑채에서는 11월 16일까지 김종학 화백 수집가구 전시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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