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도 탁 트인 전망. 북한산과 종묘, 남산타워, 광화문의 고층빌딩 숲까지…. 세운상가 9층 전망대와 세운상가 3층과 대림상가를 잇는 공중 보행교는 요즘 가장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다. ‘을지로 루프탑’으로 불리는 이 곳엔 해질녘이면 데이트족들이 몰려든다. 가장 아름다운 청계천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명소인데다, 다전식당, 호랑이카페 등 야외에 테이블을 내놓는 힙한 가게들이 성업 중이기 때문이다.
을지로에 들어선 가게들은 대게 특별한 간판을 내걸지 않는다. 작은 입간판을 내놓거나, 계단 한 켠에 붙은 포스터가 간판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숨어 있는 을지로의 명소를 공공미술과 디자인으로 해석해 좀더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을지로3가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 을지로3가역 문화예술 전시공간 ‘을지로 사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역 지하보행로에는 70여m에 이르는 구간에 ‘을지로 사이’가 오픈했다. 신한카드와 서울교통공사, 굿네이버스가 함께 만든 문화예술 전시공간으로, 세운상가의 장인들과 을지로의 핫한 가게들의 이야기가 예술작품으로 전시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계탑 광장. 파리, 런던, 베이징, 뉴욕 등 세계 주요도시의 시간을 보여주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계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을지로를 상징하는 듯하다.
‘메이드인을지로’ 섹션에서는 세운상가의 기술장인들의 작업물이 아트워크로 전시됐다.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다다익선’ TV제작에 참여했던 이정성 엔지니어, 50여년간 3대에 걸쳐 경찰관과 소방관용 특수조끼를 만들어 온 이종훈 장인, 게임기를 만들다 화폐교환기를 발명한 주승문 장인…. 을지로에서 생산되는 부품과 공구, 인쇄기와 타일도기, 조명기구 등도 지역 디자이너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을지로를 이용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을지로를 관찰하는 작가들도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 곳만의 ‘을지로다운’ 이야기를 지역 스튜디오 ‘망우삼림’의 윤병주 작가의 눈으로 담은 갤러리도 마련됐다.
을지로3가역 12번 출구 앞에 마련된 ‘을지로 컬쳐존’에서는 독립출판물, 전문매거진, 영상팀의 특별 콘텐츠를 한 곳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을지로를 취향대로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도인 ‘을지로 컬처맵’도 디지털로 감상할 수 있다.
● 디자인과 예술을 통한 도심재생 프로젝트
소상공인과 장인, 예술가를 연결시키는 ‘을지로3가 프로젝트’는 2년 전부터 시작됐다. 신한카드가 본사를 을지로로 옮겨오면서 지역의 중소상공인 가맹점과 상생프로젝트를 펼친 것. 기업이 도심재생을 통해 사회공헌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문 시도였다. 올해 3월에는 어두운 골목길에 있던 낙후된 서울시립청소년센터를 지역과 사람, 문화를 잇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단장했다. 이곳에서는 을지로를 다룬 독립출판물, 전문매거진, 영상 콘텐츠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고강석 신한카드 브랜드기획팀 부부장은 “을지로 고유의 지역 문화와 자산을 활용하는 공공디자인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라고 설명했다.
16일부터는 을지로 12곳의 가게와 예술가들이 협업하는 팝업 전시인 ‘을지로 아트위크’도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 허준 선생이 환자를 치료하던 ‘혜민서’ 자리에서 운영 중인 ‘커피 한약방’에서는 전통민화가 김제민 작가의 ‘향기약방’ 전시가 열리고 있다. 벽에 걸려 있는 아티스트 부채로 마치 한약을 달이듯 정성껏 커피를 식혀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혜민당’에서는 디저트를 풍경으로 담은 조은아 작가의 이색적인 동양화, 그리고 동양화를 닮은 특이한 디저트를 만날 수 있다.
‘그랑블루’에서는 사랑을 주제로 한 함영훈 작가의 미디어아트 ‘LOVE’가 전시되고, 카페 ‘녁’에서는 김건주 작가가 가게의 벽과 유리창을 숲으로 변신시켰다. 숲 속 동물을 담은 일러스트 공간과 아트같은 푸드 플레이팅을 경험할 수 있다. 아티스트들의 영감의 성지로 유명한 ‘호텔수선화’에서는 다양한 감각의 비주얼 쇼가 열리고, 세운상가 ‘호랑이 카페’에서는 문신기 작가가 카프카의 ‘이방인’ 등 문학을 재해석한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챔프커피’에는 잭슨심 작가의 ‘아임챔피언, 킹콩!’ 작품 감상과 함께 응원메시지를 담은 킹콩 스탬프도 가져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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