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스크린으로 등록된 슈퍼플렉스G관에 들어선 관객들이 스크린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스트리밍서비스(OTT) 왓챠플레이가 고객들을 대상으로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의 극장 특별 상영을 마련한 날이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만 볼 수 있는 5부작 시리즈를 6시간에 걸쳐 극장 스크린으로 ‘정주행’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보니 신청자 총 5만8571명이 몰렸다. 이 중 628명만 낙점받았다.
이날 아침 대전에서 출발했다는 김모 씨는 “체르노빌 재난을 그대로 고증한 작품을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신청했는데 당첨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와 애플 등이 뛰어든 스트리밍서비스 시장에 춘추전국시대가 열리며 콘텐츠 유통에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멀티플렉스 극장 메가박스에서 23일 개봉한 데이비드 미쇼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더 킹: 헨리 5세’는 콘텐츠와 스크린의 경계를 한 단계 무너뜨렸다. 자유분방한 왕자 할(티모테 샬라메)이 왕좌에 올라 혼란에 빠진 영국의 운명을 짊어지는 이 영화는 영국-프랑스 간 100년 전쟁 중 일어난 아쟁쿠르 전투를 하이라이트로 다룬다. 국내에서는 이달 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중세 전쟁 현장에 있는 듯 몰입감 넘치는 장면이 입소문을 타면서 더 큰 화면에서 상영되길 원하는 관객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상영을 시작으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같은 멀티플렉스 극장들과 충돌해왔다. 통상 극장 개봉 영화들이 2∼3주간의 극장 상영기간(홀드백)을 둔 뒤 주문형 비디오(VOD)로 넘어가는 데 비해 넷플릭스 영화는 극장과 넷플릭스 동시 상영을 고수했기 때문. ‘더 킹…’에서는 극장 상영 기간을 8일로 보장해 한발 물러선 모양새를 취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고객이 콘텐츠를 보기에 가장 좋은 스크린이 무엇인지가 판단 기준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과 감독을 비롯한 창작자들의 의견을 늘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극장과 온라인에서 동시 개봉할 경우 영화 생태계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다른 한편에는 영화를 보는 플랫폼과 콘텐츠의 형태가 다양해진 상황에서 선극장 개봉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극장들의 넷플릭스 콘텐츠 상영은 수익 다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극장의 고민과도 맞닿아있다. 최근 극장의 기조는 ‘재미있는 콘텐츠는 최대한 상영한다’다. 올해 시즌8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상영하기 위해 극장들이 HBO와 접촉했을 정도다. 대관 행사로 관객을 모으고 4D 등 새로운 상영 버전의 개발과 함께 해외 시장도 계속 모색하는 이유다.
올해 상반기 역대 최초로 ‘1000만 영화’가 4편(극한직업, 어벤져스: 엔드게임, 기생충, 알라딘)이나 나오며 극장은 사상 최고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올해 8월은 성수기인데도 박스오피스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했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극장이 올해 상반기 최대 실적을 낸 것은 영화관 시장의 구조적 성장이 아닌 콘텐츠 흥행에 따른 일시적인 호조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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