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시인이 되면 보통 선집을 내놓는데요. 제가 영어로만 아니라 한국어로도 선집을 출간한 적이 없어요. 영문 시선집을 내놓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남다른 의미가 있어요. 독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최영미(58) 시인이 첫 영문 시선집 ‘The Party Was Over’가 “누군가의 가슴에 닿았으면 좋겠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부터 지난 6월 낸 ‘다시 오지 않는 것들’까지 25년 넘게 쓴 시편 가운데 25편을 엄선해 영문 번역했다. “내가 선택한 시도 있고, 번역자가 선택한 시도 있다. 번역해준 전승희 선배, 알리스 킴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서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최영미 시인에게 현실적이지 않은 시는 없다. 서정시에서 풍자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오늘날 시인의 역할을 돌아보게 만든다. 놀라운 발상과 중의적인 표현은 최 시인만의 특징이랄 수 있다. 최 시인은 “시선집 출간은 원래 계획엔 없던 일”이라면서 “오는 11월 4일부터 대만 카오슝에서 열리는 세계 여성대회 ‘월드 컨퍼런스 위민스 쉘터’의 패널로 초대받으면서 시작됐다”고 전했다.
“대회 주최 측에서 영어로 된 책을 갖고 오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영어 시집을 낸 적이 없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서 그 때부터 준비했다. 대회엔 1500명 정도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인회도 있고, 책을 낸 사람들도 많이 온다.”
이번 영문 시선집은 최 시인이 설립한 이미출판사의 두번째 책이다. 일단 국내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해외 출간이나 배포를 위해서도 접촉 중이다. “비즈니스를 처음 해봤다. 아마존의 셀러로 등록하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 않다. 요구하는 게 많고 어려움이 있다. 에이전시가 도와주면 좋겠다.”
또 “시선집 제목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며 “여러 개가 있었는데, ‘The Party Was Over’은 차선책”이었라고 소개했다. “외국인에게 널린 알려진 작품의 제목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서른을 빼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미 젖은 신발은/ 다시 젖지 않는다// 이미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 이미 가진 자들은/ 아프지 않다// 이미 아픈 몸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미 뜨거운 것들은/ 말이 없다’(‘이미’ Already)
시선집 첫머리에 등장하는 시는 ‘이미(Already)’다. “첫 시로 ‘이미’를 넣을지 ‘과일가게에서’를 넣을지 고민했다. 미국 버클리대 시낭송회에서 뜨거운 박수를 받은 ‘과일가게에서’를 버리고 모험을 하기로 했다. 내 인생의 새로운 출발, 이미 출판사의 이름을 탄생시킨 시다.”
최 시인은 “춘천에서 40대 시절을 한가하게 보냈으나 이번 시선집을 준비하면서 잠을 거의 못 잤다. 여유롭게 보낸 세월에 대한 반대급부를 돌려받은 것 같다. 최근 2주간 밥 먹을 시간조차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돼지들에게’의 영문 시집도 준비하고 있다. 언어의 벽을 넘어 많은 독자들을 만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내년에 장편소설 ‘청동정원’,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돼지들에게’를 이미출판사에서 다시 낼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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