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길이라도 잃을까 봐…, 손님은 나와 맞는 게 당연하고.” 의외였다. 요즘 세상에 대문 밖 마중이라니. 2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전등사 회주인 동명 스님(69)은 바깥에서 한참을 기다린 눈치였다. 죄송한 맘에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찾는다” 했더니, “큰스님은 말년에도 객을 나와 맞았다. 그게 인정이고 가르침”이란다.》
그 큰스님은 바로 해안 스님(1901∼1974)을 일컫는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방에 전하는 불교 전등회(傳燈會)를 만든 고승이다. 올해로 전등회는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이에 동명 스님은 최근 전북 부안군 내소사에 스승을 기리는 심인탑(心印塔)을 세우기도 했다.
―심인탑이란 어떤 뜻인가요.
“불법으로 깊이 들어가면 어렵고, 이름대로 ‘마음에 도장을 찍는다’고 여기면 무방합니다. 큰스님이 열반한 곳에 마음을 심어놓잔 바람이죠. 스승께선 ‘생사어시 시무생사(生死於是 是無生事)’를 중요한 가르침으로 남기셨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이것(마음)에서 나왔으나, 마음에는 생사가 없다는 얘기죠.”
―솔직히 알쏭달쏭합니다.
“단박에 알아듣는 게 더 이상하지요, 허허. 그러니까 삶도 죽음도 세상 모든 일이 마음에 달렸다, 그렇다고 마음에 얽매이면 안 된다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뭣보다 깨달음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없어요. 모두가 마음을 지녔으니 공부하고 참선하면 불법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심인탑에도 그런 큰스님의 정신을 담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인가요. 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정성을 많이 들였지요. 7년 정도 걸렸나 봅니다. 국보 제101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높이가 5.5m, 기단 한 변이 4m로 국내 승탑 가운데 가장 큰 규모죠. 훗날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도 고려했습니다. 스승에 대한 존경과 효심도 깃들어 있고요.”
―외람되지만, 불가에선 연(緣)에 얽매이지 말라지 않나요.
“하하,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끊으라는 건 사소한 인연이에요. 나라 사랑이나 부모 공경이 어찌 사소한 일이겠습니까. 스승에 대한 존경도 마찬가지죠. 승려가 속세에서 벗어났다고, 숭고한 가치를 저버리란 얘긴 아닙니다. 그럼 호국불교 정신이 어떻게 가능했겠어요. 세상을 버리는 게 깨닫는 길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중생과 함께 숨쉬셨습니다.”
―해안 스님도 사부대중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셨다면서요.
“어떤 만남도 소중히 대하셨습니다. 거동조차 힘드실 때, 한 할머니가 찾아왔어요. 아들 장가가는 데 길일을 정해 달라는 거예요.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스님은 얘기를 끝까지 경청하고 호응해 주십디다. 뒤에 말씀이 ‘쓸데없어 보여도 그분에겐 중요한 일이다. 불법을 묻지 않는다고 존중받을 자격이 없진 않다’고 하셨어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무릎을 딱 쳤죠.”
―큰스님을 위한 또 다른 계획도 있습니까.
“시일이 좀 걸려도, ‘수행관’을 건립하려 합니다. 누구나 찾아와 수행할 수 있는 도량이지요. 이건 큰스님만을 위한 건 아닙니다. 불가에 몸을 둔 이로서 당연히 할 일이지요. 요즘 세상이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지요? 의견이 갈리는 건 나쁘지 않으나, 상대를 무시하고 경청하지 않는 건 큰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상처가 참 많아서 그렇긴 한데…. 결국은 마음에 달린 문제예요. 나만 옳다는 착각이 포용과 화해를 가로막습니다.”
전등사를 나서다 문득 궁금했다. “언제 큰스님 생각이 많이 나십니까.” 동명 스님은 잔잔히 미소로 해안 스님의 시 ‘멋진 사람’을 들려줬다. ‘… 산창(山窓)으로 스며드는 솔바람을 듣는 사람이라면/구태여 불경을 아니 외워도 좋다.’ 문득 하늘이 참 높아 보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