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배뚤한 그림이 그려진 동화적 표지와 달리 이야기는 꽤 서늘하다. 세상살이를 안다는 건 순응하게 된다는 뜻이다. 예전 같으면 주먹 불끈 쥐었을 일에 눈을 질끈 감고, 팔을 걷어붙이는 대신 고개를 조아린다. 어른은 그런 거란 자기 위안을 방패삼아 존엄과 멀어져 간다.
저자가 ‘팽이’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이다. 10편의 단편이 실렸다. 다수의 작품에는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도 중요한 것을 잊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고모는 가난하니까 이런 데 사는 것”이라는 어린 조카의 타박을 고모는 친밀함으로 응수한다. 마음이 오가는 작은 시간이 쌓이며 두 사람은 거리를 좁혀간다.
‘돌담’의 주인공인 나는 회사의 무신경함에 조금씩 시들어간다. 이익을 위해 독성 물질이 첨가된 장난감을 팔면서도 “그 정도는 괜찮다”는 회사. 나의 항의에 회사는 협박으로 응수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떠올리며 끝내 버텨낸다.
‘어느 날(feat.돌멩이)’은 종말 직전의 어느 날이 배경이다. “가까운 곳에서 죽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주인공은 “우리가 아무리 멀어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가깝다고, 영영 함께인 것”이라 읊조린다. 진창 같은 현실에 의연함, 작은 빛줄기, 희미한 희망으로 맞서는 인물들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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