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마야 뒤센베리 지음·김보은 이유림 옮김·윤정원 감수/540쪽·2만7000원·한문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어떤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체중을 줄이라는 권고를 의료진에게서 남성보다 더 많이 받는다. 실질적인 통증과 신체 증상을 호소해도 의료진이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등 심인성(心因性)으로 보고 히스테리 같은 엉뚱한 진단을 내리는 경우도 환자가 여성일 때 훨씬 더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저자는 진단과 의료의 분야에서 성별에 대한 편입견이 수백 년간 미쳐온 해악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19세기 중반 부인과라는 새 전공 분야가 출현하면서부터 여성 의학은 곧 생식기 의학을 가리키게 됐다고 지적한다. 20세기가 될 때까지 미국에서만 약 15만 건의 난소 적출술이 시행됐다.
의료진이나 의학교수 대부분이 남성인 상황에서 몰이해의 골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여성의 정체성에 인종·사회적 편견이 더해지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유색인종 여성은 마약중독자, 교육 수준이 높은 백인 여성은 건강염려증 환자로 치부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진단과 치료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다.
응급실에서 복통 치료를 받기까지 남성은 49분, 여성은 65분 걸린다. 심장마비가 온 젊은 여성은 집으로 돌려보내질 확률이 남성에 비해 7배가 높다. 저자는 수십 년간 현대 의학이 채택한 유일한 모델은 몸무게 70kg의 백인 남성에 맞춰져 있다고 일갈한다. 복통을 월경통으로 치부하거나 호르몬의 영향을 강조하며 잘못된 진단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각종 통계, 의료진과 환자에 대한 광범위한 인터뷰를 통해 충격적인 사실들을 빼곡하게 담아냈다.
다만 일반적인 독자가 읽기에는 의학용어와 각종 수치가 지나치게 세세하다. 540쪽이라는 분량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의사, 또는 의학이나 각종 과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는 해당 분야에서 성별에 관한 선입견이 얼마나 깊은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무릎을 치며 살필 좋은 교과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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