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만 보면 마치 페이즐리 무늬(올챙이 모양 같은 무늬) 벽지나 퍼런 타일이 반기는 고풍스러운 숙박업소, 또는 대중목욕탕 같다. 속내는 아니다. 인디 밴드부터 실험 미술가까지, 요즘 새로운 음악과 문화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공간이 앞다퉈 ‘장(莊)급’ 간판을 단다. 바야흐로 에어비앤비와 호캉스, 유튜브 스트리밍이 일반화한 시대에 튀는 공간들이 각광받는 이유가 있다.
○ 뉴트로와 맞물린 도시재생 공간
인천 중구 신포로에 있는 ‘인천여관X루비살롱’은 음반사 루비레코드가 운영하는 곳이다. 인천의 옛 개항장 지역에 위치한 이 건물은 1965년 세워져 여관으로 쓰였다. 1970년대 ‘눈이 내리네’로 인기를 모은 가수 이숙이 한때 소유했다. 이후 여인숙으로 쓰이다 루비레코드가 인수한 후 리모델링해 2017년 문화공간으로 재개장했다. 3층짜리 건물은 낮에 주로 카페로 운영하지만 공간 곳곳을 작은 음악감상실, 공연장, 전시장으로 꾸며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의 ‘행화탕’은 원래 이름도 ‘행화탕’이었다. 1958년부터 아현동 주민들을 품는 대중목욕탕으로 반세기 동안 자리했다. 2008년 목욕탕으로 생을 다한 뒤 잠들어 있다 문화기획자 서상혁 씨를 만났다. 서 씨는 동료와 이곳을 문화공간으로 재단장해 2016년 ‘개탕’했다. 그는 “58년 개띠인 행화탕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새 숨을 불어넣었다. 방문자들이 세신(洗身)을 하며 잠자던 예술에 대한 욕망을 발현했으면 한다. 탕의 시설은 남아있지 않지만 주인집 주택과 미로처럼 연결되는 공간 특성을 활용해 여러 행사를 열고 있다”고 했다.
애초에 공연장이나 전시장으로 설계한 곳과는 판이한 공간 분할 방식이 이곳들의 매력이다. 도시재생에 뛰어든 지방자치단체, 젠트리피케이션에 지친 문화기획자들의 가려운 부분이 서로 맞닿으면서 요즘 더 시너지를 내고 있다.
○ 편안한 분위기, 독특한 콘셉트
최근 현대카드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서 개최한 페스티벌 이름은 ‘다빈치모텔’이다.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바이닐앤플라스틱 등 세 곳에서 이틀간 공연과 강연을 펼쳤다. 특설한 모텔 간판, 참가자들에게 나눠준 열쇠와 생필품 꾸러미가 숙박업소를 연상시켰다. 현대카드 측은 “미국의 고속도로 변에 있는 모터 호텔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다빈치처럼 좌뇌와 우뇌를 각각 채워줄 강연과 공연을 1박 2일 동안 만끽할 수 있는 콘셉트로 꾸몄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의 ‘연남장’은 여관의 장(莊)이 아닌 마당 ‘장(場)’자를 쓴다. 원래 유리공장이었던 곳을 새로 단장했다. 지난달 말 열린 페스티벌 ‘주파수, 서울’에서 천용성, 참깨와 솜사탕 등이 공연했는데 1층 로비의 높은 층고가 독특한 분위기와 음향을 자아냈다.
음반 기획사 ‘페이지터너’는 사옥을 최근 마포구 양화로의 가정집 건물로 옮겼다. 근대건축의 거장 김중업 씨(1922∼1988)가 설계한 이곳에 공연장과 서점을 갖춰 ‘문악관(가칭·文樂館)’이라 하고 예술가 벼룩시장 프로그램 ‘예스터데이즈 투모로’를 만들어 연말에 사진작가 안웅철 씨 소장품을 내놓는 ‘안웅철장’을 열 계획이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런 장소는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이들에게는 뉴트로(새로운 복고) 감성으로 다가가며 인스타그램 성지도 된다. 장, 탕 등에서 떠오르는 편안한 이미지 역시 문화공간에 매력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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