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로 유명한 고장은 많습니다. 경기 포천의 이동갈비, 부산 해운대의 암소갈비, 남도지방의 떡갈비 그리고 경남 안의(함양)의 갈비찜…. 그래도 경기 수원의 왕갈비가 으뜸이 아닐까요? 갈비 크기가 얼마나 컸으면 일본의 극우 논객인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 전 특파원은 수원왕갈비를 잡고 뜯는 모습이 하모니카를 부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을까요.
수원왕갈비와 정조의 화성 축조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정조는 신도시 완성을 위해 전국의 양반들을 설득해 이주시킨 뒤 그 자제들에게 별시를 시행해 벼슬을 나눠 줬습니다. 그런데 일반 백성들의 이주가 문제였습니다. 화성을 축조하고 둔전을 꾸려 가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 그 유인책으로 소를 한 마리씩 빌려주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3년 거치 송아지 상환’이라는 백성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걸었으니,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형성됐겠지요. 우시장 주변에는 쇠고기를 넣은 국밥 식당들이 생겼을 것이고, 광복 후 ‘화춘옥’이라는 식당이 갈비에 양념을 발라 구워 팔면서 수원갈비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와 현재 직장이 있는 곳은 수원시 우만동입니다. 우만(牛滿), 소가 가득한 동네라는 뜻이니 우시장에서 거래되기 전까지 이곳에서 풀을 뜯어 먹이면서 기다렸다는 말도 되겠지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농촌진흥청과 경기도청이 있는 수원을 매년 두어 차례 방문했는데, 이때 화춘옥에서 갈비로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수원 인근에는 골프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마이카 시대까지 도래하면서 서울에서 나들이 삼아 수원갈비를 먹으러 오니 자연스레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극한직업’이라는 영화가 유행시킨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며 수원왕갈비통닭이라는 메뉴를 소개했지요. 공교롭게도 수원에는 갈비뿐만 아니라 통닭도 유명한데, 실제 그 왕갈비통닭 맛이 수원갈비 맛과 같을지 궁금했습니다. 수원갈비의 기본 조건은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이지만, 왕갈비통닭은 그렇지 않다는 게 갈빗집 사장님들의 공통된 의견이더군요. 독자분들도 휴일에 가족과 수원 나들이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수원왕갈비로 배를 채우고, 수원화성을 한 바퀴 천천히 돌면서 역사 공부를 하면 어느 정도 소화가 됩니다. 그리고 성곽 안에 있는 통닭골목에 들러 그 맛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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