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형편에 맞지 않는 구색에 목숨 거는 여성을 비꼴 때 늘 등장하는 특징 중 하나가 밥값보다 비싼 커피와 디저트를 즐긴다는 사실이다. 밥 한 끼를 어디에서 어떤 것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변두리 식당 백반정식이 1만 원 한 장을 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커피 한 잔에 케이크 한 조각까지 곁들이면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긴 하다. 하지만 무엇이 배고 무엇이 배꼽인지는 그야말로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남이야 배보다 큰 배꼽을 안고 산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전쟁을 숱하게 겪으며 배곯기를 밥 먹듯 해 온 민족의 슬픈 역사 때문에 밥에 한이 맺히다 보니 지구촌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식사는 하셨습니까” “밥은 먹고 다니냐”는 인사말이 등장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밥보다 커피가, 커피보다 과자 값이 비쌀 수도 있는 시대다.
하우스 재배로 겨울 과일이 된 딸기로 만든 케이크 하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시는가? 달걀과 밀가루, 설탕, 버터로 만드는 제누아즈(일명 스펀지케이크)를 반죽해 오븐에 굽고 식힌 후, 럼주에 당분을 첨가해 살짝 끓인 시럽을 발라 촉촉이 적셔준다. 그 위에 달걀과 전분, 설탕을 섞은 후 뜨겁게 데운 우유를 부어 만든 페이스트리 크림을 바른다. 크림에 다양한 변화를 주기 위해 생크림에 설탕을 넣어 거품을 낸 크렘 샹티이를 섞어 바르기도 한다. 스펀지 반죽에 페이스트리 크림, 생크림을 3단, 4단 콤보로 켜켜이 바르고 사이사이 종잇장처럼 얇게 저민 딸기를 끼워 넣는다. 디저트는 아름다워야 하니까 가장 단단하고 예쁜 모양의 딸기를 케이크 최정상에 올리고 설탕과 물을 섞어 끓인 시럽에 젤라틴을 녹여 표면이 마르지 않도록 반짝반짝 코팅해준다. 백반정식에 곁들여 나오는 멸치볶음, 무말랭이 무침, 깻잎 절임이 각각 손길이 필요하듯 케이크의 한 겹 한 겹이 각각의 반찬을 만드는 정성과 견주지 못할 것이 없다.
20년 전 입학을 앞두고 디저트와 요리의 선택의 기로에서 매우 갈등했던 적이 있다. 오븐에서 바삭하게 구워지는 페이스트리 반죽에서 퍼지는 고소한 버터 냄새, 보드라운 케이크 반죽, 상큼한 과일과 어울리는 크림, 쌉싸래한 초콜릿과 달콤한 캐러멜을 떠올리며 페이스트리 전공을 꿈꿔보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기라는 누군가의 조언을 좇아 요리를 선택하고 달콤한 세계는 환상 속에 남기기로 했다. 갖고 싶은 명품 가방은 없지만 밥 한 끼보다 비싼 디저트와 잘 내린 균형감 있는 커피 한 잔에 가끔은 지갑을 열어 배포 있게 살고 싶다. 늙은 ‘된장녀’ 소리를 들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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