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거대한 시계의 합창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7일 03시 00분


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맑음. 시계.
#329 Pink Floyd ‘Time’(1973년)


저녁형 인간, 아니 심야형 인간으로서 내게 아침 알람 소리는 천사들의 합창이 아니다. 신이 막 태어난 싱그러운 하루를 선사해주는 축복의 송가라기보다는 지옥문이 열리는 소리처럼 끔찍하게만 들리는 것이다. 알람을 듣고 끄며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약 30초 동안은 적어도 확실히 그러하다. 아무리 끔찍한 것이라도 음악에 녹이면 들을 만해진다. 데스메탈(death metal)도 자청해서 들으니 말이다.

지난 주말 오후 서울 강남구의 프리미엄 다목적 홀에서 우렁찬 알람 소리를 사서 들었다. 실은 영국의 전설적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곡 ‘Time’이다. 노래를 여는 갖가지 시계 종소리의 아우성은 수억 원대의 음향기기를 타고 초고해상도 스테레오로 내 고막을 향해 쏟아졌다.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 명반을 꼽을 때 늘 거론되는 플로이드의 1973년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에 실린 곡. 음반의 음향 엔지니어는 훗날 그룹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를 만들게 되는 앨런 파슨스였다. 앞서 비틀스의 ‘Abbey Road’ ‘Let It Be’ 앨범에서 보조 엔지니어를 하며 그는 프로듀서 조지 마틴(1926∼2016), 필 스펙터 같은 거장들의 정밀 소리 세공을 육안으로 봤을 터다.

‘Time’ 도입부의 시계 소리는 오롯이 파슨스의 아이디어이자 작업이다. 그는 런던 시내의 골동품 가게를 돌며 인상적인 시계 종소리를 하나하나 채록했다. 스튜디오로 들어와 소리들을 뒤섞어 거대하며 절박한 시계의 합창을 만들어냈다. 원래는 노래에 넣기보다 입체음향을 실험하기 위함이었다.

파슨스가 들려준 어마어마한 시계 소리에 플로이드의 멤버들은 모두 탄복하며 ‘Time’의 도입부에 쓰기로 합의했다.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의 속성, 만시지탄의 정서를 담은 노래이니 찰떡궁합. 몽환과 울화, 체념의 정서가 교차하는 이 기묘한 노래를 작사한 베이시스트 로저 워터스는 당시 고작 스물아홉 살이었다.

이 노래는 결국 영국식, 프로그레시브 록 버전의 ‘서른 즈음에’인 셈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시계#파슨스#플로이드#프로그레시브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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