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화이트채플 큐레이터 로라 스미스 “울프에 관한 전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8일 16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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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스미스는 지난해부터 화이트채플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했다. 막스마라 예술상 수상자인 헬렌 캐먹과 예술가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전시 등을 맡았다. ⓒ화이트채플갤러리(Christa Holka)
로라 스미스는 지난해부터 화이트채플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했다. 막스마라 예술상 수상자인 헬렌 캐먹과 예술가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전시 등을 맡았다. ⓒ화이트채플갤러리(Christa Holka)
지난해 2월 영국 테이트세인트아이브스에서 열린 ‘버지니아 울프: 글에서 영감을 얻은 전시(Virginia Woolf:An Exhibition Inspired by Her Writings’는 미술관 사상 관객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전시다. 치체스터, 옥스퍼드로 순회전을 개최해 재방문율도 높았다고 한다. 미술가가 아닌 문학가의 이름을 앞세웠지만, 그의 삶이 아니라 글을 통해 예술을 돌아보는 독특한 전시는 큐레이터 로라 스미스의 작품이다.

5년간 준비한 전시를 오픈한 직후 스미스는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갤러리로 이직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막스마라 예술상 수상자인 헬렌 캐먹과 예술가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전시를 담당했다. 스미스를 10일 화이트채플갤러리에서 직접 만났다.

-버지니아 울프 전이 테이트 채용 면접에서 이야기해 성사됐다고.

“2012년에 테이트세인트아이브스에 채용되며 있었던 일이다. 면접 과정에서 미술관에서 할 만한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 관한 전시를 제안했다. 당시 예술감독이었던 마틴 클락이 나처럼 울프의 전시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기분 좋은 우연이었다.”

-울프에 관한 전시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에서 벤 니컬슨, 바바라 헵워스, 패트릭 헤론 등 예술적 유산은 충실히 다뤄왔다. 그런데 그곳의 문학적 유산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다. 버지니아 울프가 13살까지 매년 휴가를 갔고, D.H. 로렌스와 캐서린 맨스필드도 별장을 갖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다루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게다가 울프의 ‘등대로’(To the Lighthouse)에 등장하는 등대가 바로 세인트아이브스에 있는 그 등대다.”

-울프의 글을 렌즈로 여성 작가의 작품을 조망했다.

“나에게 중요했던 또 다른 테마가 바로 여성 미술사였다. 테이트에서 꼭 페미니즘 전시를 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싶진 않았다. 대신 울프의 글을 전시의 뼈대로 삼은 것이다. 또 전시가 열린 해는 영국에서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투쟁)가 열린 지 100주년이 되는 때였다.”

-울프의 전시일 줄 알고 들어가서, 여성 작가들의 다양한 시각 언어에 매료됐다. 큐레이터로서 여성 작가를 조명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나.

“미술엔 아주 많은 버전의 역사가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주류 미술사는 남성 중심이다. 통계만 봐도 내가 테이트세인트아이브스에 갔을 때 20년 동안 개인전 23번이 열렸는데, 여성 작가 릴리 반 스토커 단 한 번뿐이었다. 세인트아이브스의 작업실을 미술관으로 만든 바바라 헵워스는 제외한 수치다. 통계는 놀랍지 않았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인지하지 않는 것이 놀라왔다. 2012년인데도! 그런데 이런 일이 테이트뿐 아니라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큰 미술관 어디에서나 있는 일이다. 또 여성성을 하나의 덩어리로 바라보니 다양성을 보여줄 기회도 적었다.”

-작가 82명에 작품 200여점. 쉽지 않았을 듯하다.

“어려웠지만 아주 만족스럽고 흥미롭고 신나는 일이었다. 테이트에서 준비 기간 5년을 줬다. 처음 목록을 작성했을 땐 작가 300명에 작품 700점을 꼽았다. 동료 큐레이터와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숫자를 줄일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많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또 울프의 동시대작가 뿐 아니라 컨템포러리 작가를 포함하는 것도 중요했다.”

-전시 반응은 어땠나.

“개막 직후 런던으로 와버렸다. 그런데 전해 듣기로 반응이 좋았다. 관객 만족도가 어느 전시보다 가장 높았고, 옥스퍼드에서도 관객들이 수차례 재방문했다고 한다.”

-화이트채플과 테이트에서 큐레이팅의 다른 점이 있다면.

“테이트는 멋지면서 어렵고, 화이트채플도 다른 이유에서 멋지면서 어렵다(웃음). 가장 다른 점은 준비 기간. 테이트는 통상 5년 전부터 준비하는데, 그러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것이 쉽지 않다. 5년 뒤 트렌드를 예상한다는 건 거의 점쟁이 같은 일이다. 예술가에게도 ‘테이트에서 전시할래?’하면 좋아하지만, 5년 뒤라고 하면 때로 당황해한다. 아주 느리고 무거운 과정이다. 그런데 화이트채플은 보통 1~3년 전부터 준비해, 트렌드에 더 빨리 대응할 수 있다.”

-큐레이터로서 관심 가는 주제는.

“여성 작가와 계급 문제. 미술계가 왜 중산층, 상류층 출신 예술가와 큐레이터들에 의해 주도 되는지에 관심 있다. 노동자 계급은 별로 없다. (영국 사회는 계급 구분이 뚜렷하다.)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특권이자, 결여라고 생각한다. 계급의 다양성, 민족의 다양성을 늘 생각한다.”

-내년엔 어떤 전시를 선보일 예정인지.

“내 전시는 9월로 예정돼 있는데 아직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기후 변화와 환경에 전시를 다룬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내년 2월에 2000년 이후 구상으로 회귀한 트렌드를 돌아보는 ‘Radical Figures’ 전이 열린다. 수석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로 12명 작가가 참여했고, 초대형 회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동료 큐레이터인 에밀리는 카를라스 봉고와 함께 카드보드로 만든, 100% 재활용 가능한 작품을 제작 중이다.”

런던=김민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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