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AI 무너뜨린 이세돌…‘한돌’에게 92수만에 불계승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8일 16시 20분


사진=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사진=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78이 이세돌 9단에게 마법과 같은 수일까.

이 9단의 은퇴기인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한돌 대결’ 3번기 첫판에서 이 9단이 92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흑 78이 결정타이자 승착이었다. 이 9단은 2016년 알파고와의 대결 4국에서 이른바 ‘신의 한수’로 불리는 78수 이후 바둑을 역전시키며 승리를 낚았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바디프랜드 본사에서 낮 12시에 시작된 이날 대국은 이 9단이 두 점을 놓고 덤 7집반을 한돌에게 주는 치수로 진행됐다.

이는 호선과 두 점의 중간 치수로 숫자로 말하자면 1.5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치수에 대해 인공지능이 계산한 한돌의 승률은 15% 안팎이다. 하지만 중국의 줴이(絶藝)가 두 점으로도 프로 정상급 기사들을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바둑계에선 1.5점이면 한돌의 승리를 유력하게 내다봤다.

초반 분위기는 한돌이 잡아나갔다. 특히 우변에서 흑 대마를 공격하면서 한돌의 승률을 조금씩 상승해 백 63으로 모자를 씌우며 공격할 시점에는 한돌의 승률이 22~23%로 높아졌다.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바둑이’를 개발한 이주영 한국고등교육원 교수는 이 대국을 유튜브에서 중계하면서 “1%씩 승률이 줄어드는 것이 적어 보이지만 나중에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며 “한돌이 승률을 계속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돌이 순항하던 분위기는 갑자기 백 75, 77로 끊는 무리를 범하면서 급격히 반전됐다. 흑 78이 회심의 급소. 백 79, 81도 방향착오였으며 흑이 82를 선수하고 84로 끊자 요석인 중앙 백 3점이 잡히면서 승부가 사실상 끝나버렸다. 한돌이 계산한 승률도 이 무렵에는 4%대로 떨어졌다.

흑 92 때 한돌이 돌을 던졌는데 A로 나와도 B의 장문으로 백돌이 살아갈 길이 없다.

이 9단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한돌이 프로기사라면 당연히 두는 수를 착각한 것 같다. 오늘 수비형 바둑을 뒀는데 인공지능과 대국을 두며 준비해보니 수비형이어야 승률이 조금이라도 높았다”고 말했다.

한돌을 개발한 NHN엔터테인먼트 측은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 대국이 성사된 것은 한 달 반 전. 호선 바둑으로 세팅된 한돌을 급하게 접바둑 모드로 바꿨지만 버그 없이 바둑을 둘 수 있게 테스트하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한돌은 올초 국내 정상급 기사 5명을 호선으로 이겼다. 당시 기력 측정 레이팅 점수가 4200이었고 현재는 4500까지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 최고수는 3600. 레이팅 점수가 400이상 차이나면 점수가 낮은 쪽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때 이번 한돌의 패배는 실력이 약해서라기보다는 접바둑에 적응하지 못해서라고 볼 수 있다.

2국은 19일 낮 12시 같은 곳에서 열린다. 이번 3번기는 한판의 승패에 따라 치수가 바뀌는 단판 치수바꾸기여서 2국은 호선 바둑으로 둔다. 접바둑 버그가 없기 때문에 한돌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관심은 21일 전남 신안 엘도라도리조트에서 열리는 3국에 쏠린다. 다시 1국과 같은 치수로 돌아가는데 이 9단이 또다시 승리할지, 한돌이 버그를 피해 설욕할지 주목된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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