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생물학 용어인 ‘항상성(homeostasis)’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대략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거나 생체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체온, pH, 혈당 등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만 움직여야 하는데 이러한 자동 신체 조절 반응을 항상성이라 부릅니다. 만약 체내 항상성이 깨진다면 질병으로 연결되고 심할 경우엔 사망에 이르게 되지요. 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호흡이 가빠지고 하는 모든 반응도 신체의 균형을 잡아주려는 항상성이 작동한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항상성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돈을 벌더니 사람 성격이 바뀌었다든지, 사업을 하면서 초심을 잃는다든지 하는 것들도 항상성이 깨진 결과입니다.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로 구두쇠 친구가 갑자기 동창회에 큰돈을 기부하면 곧 회장 선거에 나올 것이라고 수군거리지요. 또 단체 대화방에서 평소 ‘눈팅’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 눈치 빠른 친구들은 곧 청첩장이 날아올 것임을 예측합니다. 옳든 그르든 이러한 ‘느닷없음’ 자체가 항상성이 깨진 것이고, 항심(恒心)이 무너진 하나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치과나 이발소를 수십 년째 한곳만을 다닌다면 이 역시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본능적 행동일 것입니다. 치과 치료 방법이나 헤어스타일이 갑자기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제가 주로 다니는 식당도 최소한 십 년이 넘은 곳들입니다. 뇌가 기억하고 또 기대하는 그 식당 특유의 맛이 있기 때문에 자동 반응으로 찾아가는 것이죠.
얼추 잡아도 족히 20년 넘게 항상성을 유지한 생선구이집이 주변에 있습니다. 특별한 계절 생선인 도루묵, 양미리 혹은 전어구이가 아니라면 점심에 자주 찾는 곳이지요. 사실 생선구이만큼 단순하면서 솔직한 음식은 많지 않습니다. 같은 어종이라도 굽는 테크닉, 생선 손질법, 오븐이나 화로의 종류 등에 따라서도 맛의 차이가 나긴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물 좋은 생선을 구하고 선도를 유지하는 것이 최고겠지요.
저는 생선구이 식당을 갈 때는 최소한 세 명 이상 동반을 합니다. 혼자이거나 둘은 생선 어종이 제한을 받으니 여러 가지 맛을 즐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로 시키는 어종은 고등어, 갈치, 조기, 삼치 등인데 넉넉한 인심의 사장님은 꽁치나 청어를 서비스로 내주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 노릇노릇하게 잘 구운 생선껍질과 기름 오른 꽁치 내장구이에 낮술 한잔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만, 이러다간 저의 항상성이 깨질까봐 아직 실행에 옮기질 못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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