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있으면 흥이 나는데 왠지 가슴 저미는 게 민요의 매력”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9일 03시 00분


새 음반 ‘오방신과’로 돌아오는 소리꾼 이희문

모친 고주랑 명창과 여자 소리꾼을 다룬 ‘민요삼천리’ 공연 장면. 이희문컴퍼니 제공
모친 고주랑 명창과 여자 소리꾼을 다룬 ‘민요삼천리’ 공연 장면. 이희문컴퍼니 제공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펄펄 나구요/요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없구나/에에헤요 에헤야 어여라난다 디여라 허송세월을 말아라∼’

신민요 ‘사발가’가 디스코 리듬과 뒤섞인다. 중반에 색소폰 솔로까지 등장하니 윤기마저 흐른다. 간드러지게 장단을 타고 넘는 목소리, 이희문(43)의 것임이 자명하다. 노래 제목은 ‘허송세월 말어라’.

밴드 ‘씽씽’의 보컬이었던 이희문이 27일 새 음반 ‘오방신과’로 돌아온다. 새 밴드 ‘허송세월’과 함께. 타이틀곡이 바로 ‘허송세월 말어라’다. 10일 만난 이희문은 “지난해 ‘씽씽’ 해체 뒤 나의 존재감을 오롯이 소리로 입증해야겠다는 갈증이 있었다”고 운을 뗐다.

씽씽은 2017년 미국 공영방송 NPR의 음악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출연해 세계 음악애호가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한국 민요와 서구식 밴드 사운드가 만드는 오묘한 조화, 뮤지컬 ‘헤드윅’을 연상시키는 파격적 분장과 의상…. 유튜브 조회수 400만 건을 넘겼고, 워싱턴 케네디센터 공연까지 했다. 그러나 씽씽의 열기는 끓는점에서 꺼지고 말았다.

“멤버 여섯 명의 개성이 너무 뚜렷했어요. 서로 터치하지 않고 각자 맘대로 했죠. 그게 장점이기도 했죠.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운명의 씨앗도 됐고요. 연인이 이별하듯 자연스레 각자의 길로 갔죠.”

소리꾼의 이야기를 다룬 ‘깊은사랑(舍廊)’(왼쪽 사진), 재즈와 민요를 결합한 ‘한국남자’의 공연 모습. ‘씽씽’의 전 보컬이자 이색 소리꾼 이희문은 다양한 공연으로 눈코 뜰 새 없다. 8월에는 잡가를 재해석한 ‘이희문 오더메이드레퍼토리 잡(雜)’ 음반도 냈다. 이희문컴퍼니 제공
소리꾼의 이야기를 다룬 ‘깊은사랑(舍廊)’(왼쪽 사진), 재즈와 민요를 결합한 ‘한국남자’의 공연 모습. ‘씽씽’의 전 보컬이자 이색 소리꾼 이희문은 다양한 공연으로 눈코 뜰 새 없다. 8월에는 잡가를 재해석한 ‘이희문 오더메이드레퍼토리 잡(雜)’ 음반도 냈다. 이희문컴퍼니 제공
지난해 씽씽 해체 뒤 이희문은 무대에 더 투신했다. 씽씽 활동 때 알게 된 홍대 앞 라이브클럽들에 “저 공연 좀 잡아주세요” 하고 매달렸다. 첫 단추는 ‘프로젝트 날’.

“‘날’이란 ‘나를 (위한 것)’의 준말이자 날것의 줄임말. ‘씽씽의 그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떨쳐내고 싶었어요.”

장구, 드럼, 신시사이저가 이희문의 소리와 즉흥적으로 교감한다. 레퍼토리의 바탕은 경기소리다. 시각 연출도 달리했다. 이번엔 결혼한 신부가 콘셉트. 하얀 남성용 양복 정장 뒤춤에 하얀 한복 치마를 덧댔다. 얼굴에는 허옇게 신부 화장을 하고.

여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일부러 할 수 없는 일들, 제 안에 그냥 있는 것들”이라고 했다.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면 연기자나 다름없다. 내 모토는 ‘생긴 대로 살자’다.” ‘프로젝트 날’은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서 공연을 해 갈채도 받았다.

‘날’만으론 성이 안 찼다. 피아니스트 고희안과 ‘에고 프로젝트’도 만들었다. 재즈와 민요의 즉흥 충돌. “재즈의 격을 B급, C급으로 내려보자는 심산이에요. 허허.” 새해에는 책 ‘강남의 탄생’을 테마로 한 1인 음악극 제작에도 뛰어들 작정.

그는 국악계의 늦깎이이자 이단아다.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하고 뮤직비디오 조감독으로 일하다 26세에야 접신하듯 예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떨칠 수 없는 민요의 매력에 대해 “흥이 나는데 왠지 듣고 있으면 눈물도 나고 가슴도 저미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공연 때는 “사람이 너무 많이 와 산소가 모자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 느낌 그대로 퍼포먼스로 승화했다. 막판에 호흡 곤란으로 쓰러지는 연기를 한 것.

그는 오방신과 허송세월 밴드로서 27, 28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무대에도 선다.

“음악가든 예술가든 허송세월은 꼭 필요하죠. 저는 워낙에 길었고요. 이제는 막판 스퍼트를 올려야겠어요. 스스로를 무대에 올려놓고 매 맞으며 크는 스타일이거든요. 매 좀 흠씬 맞아보렵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오방신과 허송세월#이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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