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라기보다 일대일 기타 레슨 같았다. 서울 용산구에서 14일 만난 미국 기타리스트 폴 길버트(53)는 날렵한 ‘파이어맨’ 모델의 보라색 전기기타를 들고 기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길버트는 록 밴드 ‘미스터 빅’의 멤버다. 잉베이 말름스틴, 스티브 바이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속주 기타 거장이다.
“원래 꿈은 가수였는데 목소리가 별로였어요. 근데 이 기타만 쥐면, (빠른 속도로 연주하며) 저도 높은 음과 좋은 소리를 뿜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길버트는 인터뷰 내내 단어보다 음표를 더 많이 썼다. 쉴 새 없이 기타를 치며 작곡법과 연주 철학을 설명했다. 기타는 그의 샴쌍둥이이나 대변인 같았다.
길버트는 근래 고 신해철과 연을 맺었다. 지난해 신해철이 이끈 밴드 ‘넥스트’의 곡을 연주한 영상으로 화제가 됐고, 올해 5월 신해철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에서도 기타 연주를 맡았다.
“음악계 지인이 부탁해 참여하게 됐습니다. 고인에 관해 직접 찾아봤는데 대단히 혁신적인 음악가였더군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은 비극입니다.”
비슷한 비극을 그 역시 지척에서 겪었다. 미스터 빅 멤버로 30년간 동고동락한 드러머 팻 토피가 파킨슨병과 싸우다 지난해 숨진 것.
길버트는 이날 저녁 콘서트에서 미스터 빅의 대표곡 ‘To Be with You’와 ‘Green-Tinted Sixties Mind’도 기타 연주로 재해석해 들려줬다. 길버트가 작곡한 ‘Green-Tinted…’는 강렬한 기타 인트로로 유명한 곡. 그는 “폴 매카트니의 ‘My Love’, 비치 보이스의 ‘God Only Knows’에도 나오는, ‘m7♭5’ 코드를 활용해 만든 노래”라고 설명했다.
길버트는 전동 드릴 끝에 기타 픽(pick)을 달아 연주하는, 서커스 같은 ‘드릴 주법’으로도 유명하다.
“셀프 패러디예요. 사람들이 연주 속도에만 관심을 보이는 데 지쳐 고안했죠. ‘진짜 빠른 걸 보여줄까? 어때, 정말 바보 같아 보이지?’ 하는 심정이었죠.”
193㎝의 장신인 길버트는 손가락 길이가 웬만한 성인의 두 배에 달해 보였다.
“길어서 좋아요. 중지와 새끼를 이용한 이런 빠른 트릴(trill), 긴 엄지를 활용한 뮤트(mute) 주법을 잘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닐 숀(그룹 ‘저니’ 멤버)이나 앵거스 영(‘AC/DC’ 멤버)은 손이 작아도 믿기 힘든 연주를 해내죠.”
길버트는 내년에 솔로 신작을 낸다. 미스터 빅의 향후 활동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했다. 토피의 빈자리 때문이다.
“어제(13일)가 토피의 생일이었어요. 아직도 마음이 힘들고 그가 정말 그립습니다. 미스터 빅의 곡을 연주할 때마다 토피와 소중한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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