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학습된’ 인공지능(AI)의 벽은 높았다. 지난 18일 국산 바둑 AI ‘한돌’(HanDol)과의 2점 접바둑에서 승리한 이세돌 9단이 동등한 조건인 ‘호선’(맞바둑)으로는 패배의 쓴맛을 봤다. 전날 너무 쉽게 무너져 ‘버그’, ‘시스템 오류’가 아니냐는 빈축을 샀던 한돌이 주력 학습 분야인 맞바둑에서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 9단은 19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바디프랜드 본사에서 열린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2국에서 122수 만에 흑 불계패했다.
예상된 결과였다. 3번기 치수고치기로 진행되는 이번 대국은 지난 18일 1국에서 흑을 잡고 두 점을 깔고 시작한 이 9단이 승리하며 서로 동등하게 맞붙는 호선으로 치러졌다.
한돌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신진서 9단, 박정환 9단, 김지석 9단, 이동훈 9단, 신민준 9단 등 당시 국내 프로기사 랭킹 1위부터 5위를 격파한 바 있다. 지난달 은퇴 선언 당시 국내 랭킹 14위에 머물렀던 이 9단으로선 버거운 상대였다.
게다가 19일 현재 한돌의 버전은 3.0으로 국내 대표 프로기사들과의 릴레이 대국 당시의 2.1 버전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기력을 측정하는 ‘엘로 레이팅’(Elo rating)으로 평가할 때 한돌 2.1은 4200, 한돌 3.0은 4500을 넘는 것으로 한돌 개발사 NHN은 추산했다. 통상 최정상권 인간 프로기사가 3600 후반으로 평가된다. 엘로 레이팅이 상대보다 150 정도 높으면 승률이 60~70% 정도 되고, 400 이상 높으면 이기기 힘들 정도의 수치로 분석된다.
최선을 다했지만 AI의 벽을 넘지 못한 이 9단은 경기가 끝난 후 “지는 것이야 그럴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초반에 너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해 쉽게 패배한 점이 아쉽다”며 “마지막(3국)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이세돌의 바둑’을 둘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돌이 설욕하면서 이번 대국은 1승1패로 동률이 된 가운데 21일 낮 12시 이 9단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열리는 3국은 이 9단이 다시 2점을 놓고 AI와 맞서게 됐다.
지난 18일 1국에서 한돌이 2점 접바둑에 약한 모습을 보이며 이 9단이 2:1로 최종 승리를 거둘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NHN에 따르면 호선일 때 54~55%로 시작하는 한돌의 승률은 흑(이 9단)이 두 점을 깔고 시작할 때 8%까지 떨어진다.
부족한 학습량도 한돌의 약점으로 꼽힌다. 평소 한돌은 동등한 조건에서 대국하는 호선을 학습했다. 이번 대국을 위해 2점 접바둑을 준비한 기간은 2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1국에서 이 9단이 패배했을 경우를 대비해 3점 접바둑까지 학습해야 했기 때문에 2점 접바둑 학습량은 더욱 부족했다는 후문이다.
이창율 NHN 게임AI팀장은 지난 18일 1국에서 패배한 후 “머신러닝은 학습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능이 올라가는데, 2점 접바둑뿐 아니라 3점 접바둑도 준비해야 해 학습량이 많지 않았다”며 “전체적으로 학습량이 부족한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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