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잘 살려면 남다른 무언가 하나는 있어야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때마다 산타를 태우고 세계를 빛의 속도로 돌아다닌다는 루돌프 사슴이 ‘매우 반짝이는 코’ 덕분에 선택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루돌프는 이 영광스러운 코를 어떻게 얻었을까?
녀석의 코를 탐구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게 두 가지 있다. 사실 녀석은 사슴(deer)이 아니다. 사슴과에 속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다른 순록(Reindeer)이다. 우리나라에 노래가 들어올 때 낯선 순록 대신 사슴이라고 표현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순록은 사슴이 살지 않은 북극 근처 툰드라에 산다. 1년 중 대부분이 겨울인 곳이다. 또 하나, 루돌프는 이곳 출신이 아니라 한참 떨어진 미국의 시카고,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1939년 미국 시카고 몽고메리 워드 백화점의 광고 카피라이터 로버트 메이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동화 같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고객들에게 나눠주면 좋겠다 싶었다. 동화 속 8마리 순록에 매우 반짝이는 코를 가진 주인공을 새롭게 등장시켜서 말이다.
동료인 덴버 길렌에게 동물원에 있는, 순록과 비슷한 사슴을 스케치 해오라고 한 그는 두 개의 이름을 생각했다. 롤로와 레지날드. 하지만 둘 다 상사에게 퇴짜를 맞는 바람에 다시 생각한 게, 네 살짜리 딸이 좋아하던 이름 루돌프였다. 그렇게 ‘빨간 코 순록 루돌프(Rudolph the Red-Nosed Reindeer)’가 태어났다. 문화사에 해박한 찰스 패너티에 의하면 이 제목을 단 작은 책자는 당시 240만 부나 배포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빨간 코 덕분이었을까?
사실 빨간 코는 녀석만 가진 게 아니다. 물론 녀석의 코가 ‘불붙는 듯’ 유난히 빨갛긴 하지만 다른 순록들의 코도 빨갛다. 툰드라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촘촘하게 배치한 모세혈관 때문이다. 어쨌든 미국 내 스타였던 루돌프가 세계적인 스타로 ‘빵’ 뜬 건 뒤이어 나온 노래 덕분이었다.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로 시작하는 바로 그 노래다. 이 때문에 몇몇 가수들이 가슴을 쳐야 했는데, 1947년 작곡가 조니 마크스가 노래를 만들어 접촉했을 때 귓등으로 흘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진 오트리는 굴러 들어온 호박을 품었고 루돌프는 세계를 숨 가쁘게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면 아이들을 위한 진짜 선물은 노래 가사에 있지 않나 싶다. 남다른 코를 가졌다고 놀림을 받고 외톨이가 되었지만, 사실은 그 코 덕분에 썰매를 끌 수 있었고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너무나 중요한 생존의 이치가 노래에 들어있지 않은가. 사슴이든 순록이든, 인간이든 잘 살려면 뭐 하나라도 남달라야 한다. 36억 년 생명의 역사가 주는 몇 안 되는 교훈이기도 하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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