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의 엄마이자 평범한 주부였던 김경란 씨(38). 그를 업사이클링(Upcycling) 브랜드 ‘제제상회’의 대표로 변화시킨 건 남편이 운영하는 ‘석주네 사진관’에서 매일 버리는 인화지 봉투였다.
“인화지 봉투는 겉감은 펄프, 안감은 차광 필름인 폴리에틸렌이 압착 처리돼 분리 배출하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내구성이 정말 좋거든요. 특유의 장점을 살려 일상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는 올해 3월부터 인화지 봉투로 가방, 파우치, 필통 등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매달 버리는 인화지 봉투 양만큼만 만들다 보니 한 달 평균 30∼50개를 한정 판매한다. 이 가방을 사겠다며 대기하는 고객은 수십 명에 달한다. 주문이 늘면서 김 씨는 남편의 사진관뿐만 아니라 인근의 아날로그 사진관 5곳으로부터 버리는 인화지 봉투까지 제공받고 있다.
쓰레기를 새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는 현수막 등을 활용해 만든 가방으로 유명한 스위스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처럼 기업들이 업사이클링을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개인 차원에서 사업에 뛰어들거나 공방 수업에 참여하며 생활에서 업사이클링을 즐긴다.
모터사이클 부품 업사이클링 브랜드 ‘마틸’에서는 폐차된 모터사이클의 핸드바가 펜꽂이로, 카뷰레터(공기와 가솔린을 혼합하는 기화기)는 촛대로, 밸브 스프링은 명함꽂이로 변신한다. 모터사이클 마니아인 이정윤 마틸 대표(33)는 “폐차되는 모터사이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며 “부품들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매력을 보여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취미로 업사이클링 제품 만들기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서울 명동성당 복합문화공간에 자리한 래코드(Re;code)에서는 2014년 10월부터 매 주말마다 최대 8명 규모의 소규모 업사이클링 소품 만들기 ‘리테이블(Re;table)’ 강의가 열린다. 버려진 카시트 가죽으로 카드지갑, 여권 케이스, 안경 케이스를 만드는 수업을 비롯해 총 60여 종의 공방 수업이 진행된다. 청바지로 앞치마 만들기 수업에 참여한 문지현 씨(32)는 “친환경 활동을 할 수 있어 의미 있다”고 했다. 리테이블 프로그램의 한란 매니저는 “수강생 대부분이 환경과 핸드메이드 제품에 관심이 많다”며 “30, 40대 주부와 직장인의 참여율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은 윤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은 “밀레니얼 세대는 환경 문제에 민감하고 윤리적인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이들이 소비 주축으로 떠오르면서 업사이클링 같은 가치가 트렌드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