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북을 둘러싼 전망은 올해 초반만 해도 잿빛에 가까웠다. 영미권처럼 시장이 크지 않은 데다 독서율마저 하락하는 상황. 그냥 책도 아닌 ‘듣는 책’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최근 ‘윌라’, ‘네이버오디오클립’ 등이 선전하는 가운데 유럽권을 평정한 스웨덴의 ‘스토리텔’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오디오북의 매력은 무엇이며 각각의 서비스는 어떻게 다를까. 오디오북 전문 업체인 스토리텔과 윌라의 서비스를 체험해 봤다.
○ 스토리텔
‘연말요? 자기 계발이죠’, ‘메리 크리스마스’, ‘보온병처럼 따뜻한 북유럽의 기운’, ‘통근길 시사 만사’….
최근 한국에 상륙한 신상 서비스 스토리텔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본 오디오북 목록들이다. 첫 화면부터 친숙하다. 취향에 기반한 추천 큐레이션이 넷플릭스와 비슷했다. 서비스 이용료는 월 1만1900원으로 첫 2주는 무료다.
첫눈에 들어오는 타이틀은 박상영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과 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스토리텔이 독점 계약한 작품들이다. ‘일의…’를 틀자 발랄한 30대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일, 도시, 여성을 관통하는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다.
재생 화면에는 타이머, 목차, 북마크, 속도, 다운로드 아이콘이 나타났다. 플랫폼 설계가 아이폰처럼 직관적이라 어렵지 않게 사용법을 익혔다. 친구에게 책 주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공유 기능도 인기 있겠다 싶었다. 오디오북 관련 정보가 미흡하고 ‘뒤로가기’ 버튼이 없는 점은 아쉬웠다.
스토리텔이 갖춘 오디오북은 5만여 권이다. 4만5000권은 영어 원서, 5000여 권은 국내 책이다. ‘한국어 영어 둘 다 궁금!’ 코너는 스토리텔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베어타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 등 소설은 원서와 국내서가 나란히 올라와 있다.
원서 중에는 명사가 읽은 책도 적지 않다. ‘해외 셀럽, 여기서!’에 들어가 힐러리 클린턴이 직접 낭독한 자서전 ‘Hard Choices’를 틀었다. 자서전을 읽는 클린턴의 헛기침과 작은 한숨들에 미묘한 감정이 묻어나는 듯했다. 케이트 윈즐릿이 낭독한 동화를 다음 듣기 목록으로 저장해 뒀다.
‘잠자리 동화’로도 유용했다.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대신 아이들에게 오디오북을 고르게 했다. 해당 연령대보다 어려운 책도 이야기로 들으니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이야기에 몰입해 잠드는 시간이 늦어지는 낭패도 겪었다. ‘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골라야 10∼20분 사이 잠들었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국내서가 부족했다. 스토리텔 측은 매주 5, 6권씩 데이터를 늘려 가고 있다고 한다.
○ 윌라
윌라는 강연 및 출판업체인 인플루엔셜이 운영하는 오디오북 앱이다. 앱 무제한 이용료는 월 9900원, 첫 한 달은 무료.
‘오디오북’ 코너는 인문, 경제·경영, 소설, 주니어 등으로 콘텐츠가 나뉘어 있었다. 인터넷 교보문고와 비슷한 구성이다. 무엇을 들을지 첫 선택부터 막혔다.
‘이달의 책’ 추천 코너로 눈을 돌렸다. ‘2030 대담한 도전’, ‘엄마의 말공부’, ‘익명의 소녀’, ‘백년을 살아보니’ 등이 보였다. 서비스 주 이용층인 ‘지적 호기심이 강한 30, 40대’를 위해 매주 2권씩 올려놓는다.
딱히 손이 가는 책이 없어 평소 잘 접하지 못했던 경제·경영 ‘주간베스트’에서 ‘부의 추월차선’을 골랐다. 책과 저자에 대한 소개와 목차별 재생 시간을 알려줘 선택에 도움이 됐다. 완독 시간은 8시간 20분.
인터넷 서핑, 운동, 넷플릭스 시청을 하면서 들었다. “오디오북의 최대 장점은 멀티태스킹”이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발췌독이 안 되는 점은 낯설었다. ‘차선을 추월해 부를 얻는 비법’만 알고 싶은데…. 윌라 측은 “발췌독이 안 되기 때문에 오디오북이 종이책보다 완독률이 높다”고 말했다.
윌라의 히트작인 ‘한자와 나오키’를 틀었다. 성우 한 명이 목소리를 바꿔 여러 인물을 연기했다. 윌라 측은 “연기적 요소가 지나치지 않도록 1∼3명이 목소리를 달리해 녹음하고 있다”고 했다.
윌라가 보유한 1만5000권은 짤막한 ‘리뷰’도 함께 제공한다. 지금 듣는 책은 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이다. 소설의 무대인 통영의 풍광을 설명하는 도입부 문장은 귀로 들으니 책과는 다른 맛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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