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나 고시, 전문직 충원 시스템의 공정성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조선시대는 어땠을까. 개천에서 용이 났을까, 아니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덕을 많이 봤을까. 과거 합격자를 양적으로 분석한 연구들이 새롭게 진행돼 눈길을 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1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규장각에서 학술회의 ‘조선시대사 연구와 빅데이터’를 열었다. 이상국 아주대 사학과 교수와 박종희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국제정치데이터센터장은 ‘성공의 경로―조선시대 지배엘리트의 관직이력 데이터 분석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발표문에서 “분석 결과 과거 합격자가 고위 관직에 진출하는 데에는 개인의 능력과 가문의 배경 모두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조선 500년 동안 문과 합격자는 1만5000명이 넘는다. ‘국조문과방목’에 문과 급제자 명단과 생년, 본관, 가족관계, 등수를 비롯한 개인정보가 담겨 있지만 나중에 어떤 관직을 지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반면 조선왕조실록은 어떤 사건을 기록할 때 인물의 이름과 관직을 충실히 기록했다. 연구팀은 텍스트 마이닝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록에서 인물들의 임명과 면직, 포상과 징벌 기록을 추출한 뒤 이를 문과방목 자료와 종합 분석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해 급제자 약 5000명의 집안 배경 정보와 관직 이력 정보가 결합된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것이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급제자의 시험 성적이 좋으면 대체로 고위 관직(1∼3품)에 더 빨리 진출한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 관직을 지내는 기간도 더 긴 편이었다. 개인의 능력이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합격자의 조부나 증조부가 관직을 지냈을 경우 고위 관료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이 단축되는 경향도 발견됐다. 고위 관직에 오래 머무는 데는 조부와 증조부뿐 아니라 외조부의 관직 이력도 영향을 미쳤다. 선대가 높은 관직을 지냈을수록 이런 추세가 뚜렷했다. 가문의 ‘빽’이 확인된 셈이다.
장원 급제(1등) 여부는 고위 관직에 이르는 시간과 큰 관계가 없었다.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린 시기가 포함된 순조∼순종 시기에는 시험성적이 좋은 이들이 고위 관직에 오르는 데 오히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상국 교수는 “양반 엘리트가 정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개인의 능력과 함께 가문의 영향력이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알려 준다”고 말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인문학에 활용하는 것과 관련한 시각차가 학술회의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토론자는 실록의 임명 기록이 당사자가 실제 벼슬자리에 나아갔다는 뜻은 아니며, 낙향 등으로 인한 재직 기간의 오차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희 센터장은 “역사학자는 오차 ‘0’을 목표로 하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자료를 (통계를 위한) 샘플로 보고, 오차가 전체적으로 상쇄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조선의 과거에서 서울 편중 문제는 어떻게 드러났을까. 박현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이날 ‘국조문과방목의 통계적 분석’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 유생은 16∼19세기 정기시험인 식년시(式年試) 전체 합격자의 23.8%에 불과했지만 현안에 대한 대책 등을 묻는 제술과(製述科) 합격자는 59.2%를 차지했다. 식년시는 ‘경서를 달달 외우면’ 되기에 인재 선발의 실효가 없는 시험이라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조선은 주로 지방 유생에게 급제의 기회를 제공하는 이 시험을 폐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숙종 대 이후에는 급제해도 거의 실제 관직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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