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글도 빙빙 돌리고 부드럽게 하는 성격이 못 되다 보니 ‘돌직구’ ‘지적질 대마왕’이라는 수식어가 평생 붙어 다닌다. 젊은 수강생들은 물론 인생 선배인 수강생들도 잘못하면 내게 입바른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런 내가 식당에서 불평은커녕 요구사항 하나 없이 조용한 것이 의아한 모양이다. 식당이나 요리를 평가함에 있어 지나치게 관대하다며 수강생으로부터 지적을 당한 적도 있다.
얼마 전 생일을 맞아 남편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수중발레 하듯 발끝을 치켜세운 메추리와 진하게 졸여낸 소스, 종이처럼 얇게 저며 구워 낸 우엉 껍질과 과일 콩포트,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으로 잘라낸 허브 이파리가 조합된 접시를 바라보며 이 한 접시의 요리를 위해 요리사가 며칠 동안 어떤 작업을 했을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길지 않았지만 요리사로 보낸 시간은 최고로 힘들었고, 먹는 일에 목숨을 거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해준 값진 시간이었다. 그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그들이 만든 음식을 평가하는 일에 객관적이기는 불가능하다.
모든 요리 속에는 시간이 녹아 있다. 라면 한 봉지 끓이는 데는 4분 30초가 필요하지만 프랑스 요리를 만들기 위해선 수십, 수백 배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그 시간과 노력을 체험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반드시 1년에 한 번은 프랑스 요리 수업을 하고 있다. 프랑스 요리가 왜 고급요리가 되었는지, 소스 하나 장식 하나를 더하기 위해 어떤 수고가 들어가는지를 수강생들에게 보여주고자 함이다.
프랑스 왕과 결혼한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왕녀가 데려온 요리사들의 기술을 바탕으로 발전한 것이 오늘날의 프랑스 요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양 문명은 로마에서 꽃피웠지만 서양 요리의 기틀을 다진 것은 섬세한 감각과 솜씨를 가진 프랑스인들이다. 현재 서울에서 각광받는 현대적인 한식 요리도 프랑스 요리의 영향을 받았다. 샴페인 한 잔으로 분위기를 돋우고 아뮈즈 부슈(Amuse bouche·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한 한입 거리 음식)로 미각을 깨우고, 애피타이저를 맛보며 다음 코스에 어떤 요리가 식탁 위에 펼쳐질지, 마지막의 달콤함은 어떤 디저트가 채워줄지 기대하며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이 프랑스 요리의 핵심이다.
명품이 비싸다고 안 사고 안 입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지만 장인의 손으로 명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시간의 가치를 깎아내릴 수는 없다. 프랑스 요리를 애호하는 프랑스 요리 전공자의 입장에서 그저 값비싼 허세 덩어리로 치부하지 않고 프랑스 요리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고 더 많이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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