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각색의 이 물건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은? 정답은 하수도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잡동사니들은 모두 변기나 맨홀을 거쳐 매일 하수도로 집결한다. 믿기 어렵지만 영국에서는 1년에만 약 85만 개의 휴대전화가 변기 안으로 휩쓸려 들어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하수도에서 값진 물건을 건져내는 사냥꾼을 일컫는 ‘토셔(tosher)’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미국 시사주간지 ‘더 네이션’ 기자 출신의 저자는 문명사회에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던 하수도와 화장실의 뒷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파헤쳤다. 책은 화장실의 인문학적 변천을 짚은 역사서인 동시에 분변학과 위생학을 논하는 보건서이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필독서로 선정했고, 저자가 이 주제로 펼친 TED 강연은 큰 인기를 끌었다.
선진국의 경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린 뒤의 세계는 예상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구축돼 있다. 저자가 직접 찾은 영국, 미국 하수도에서는 고약한 냄새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청결한 곳도 있다. 지하에서 일하는 하수도 노동자들의 삶은 숭고했으며, 이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물론 예상치 못한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에 지하세계는 생각보다 위험하다. 바로 폭발 가능한 수류탄이 하수도에서 발견되는 경우다.
하지만 화장실의 국가별 격차를 생각한다면, 하수도 체계의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임을 알 수 있다. 저자가 맞닥뜨린 코트디부아르의 한 화장실에는 바닥에 흰 타일만 깔려 있을 뿐 변기도, 어떠한 구멍도 없다. 각자 알아서 해결, 처리해야 한다.
우리에게 당연한 화장실 칸막이도 지구 한 편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영국, 미국,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탄자니아의 각양각색의 배변시설을 접하면 “10명 중 4명은 재래식 화장실, 변기, 양동이, 심지어 상자 같은 것조차 거의 이용하지 못한다. 화장실은 분명 특권”이라는 주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저자가 ‘분변 도착증환자’라는 오해를 들으면서도 똥, 화장실, 하수도에 천착하는 건 화장실이 인간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수인성 질병은 분변에 오염된 음식을 섭취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위생체계에서 비롯된다.
몇몇 국가에서 소녀들은 뱀과 강간범의 위협을 피해 오전 3∼4시마다 풀숲으로 숨어들어 위험천만한 배변활동을 한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가장 자연스러운 기능을 지칭하는 단어(배변, 똥)가 현대사회에서 섹스보다도 터부시됐다”며 “똥을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위생, 보건을 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화장실에서 살기’ vs ‘화장실이 없는 곳에서 살기’. 저자가 서두에 던지는 이 질문에 ‘어떻게 똥, 오줌 냄새 나는 화장실에 사느냐’던 사람이라도, 책을 읽고 나면 오늘 아침 다녀온 화장실이 더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래도 화장실은 도저히 안 되겠다고? 당신이 좋든 싫든 인간은 평생 3년은 화장실에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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