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가 밝았다. 앞으로 10년은 음반의 대표 이미지로 12㎝짜리 CD보다 12인치(약 30㎝)짜리 LP레코드(바이닐)를 떠올리는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빌보드 등 해외 주요 매체들에 따르면 2019년, 연간 LP 매출이 30여 년 만에 CD의 매출을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음악 판매량을 집계하는 ‘닐슨 사운드스캔’이 최근 발표한 2019년 시장 동향 조사서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지난 한 해 LP가 1884만 장 팔렸다.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래 최대치. LP는 무려 14년 연속 성장세를 기록했다. 디지털 음원과 CD 등 여타 매체가 전년 대비 25%까지 하락세를 보인 데 비하면 군계일학이다. 12월 마지막 주 7일 동안만 120만 장이 팔려 역대 주간 LP 판매량 기록도 깨졌다. 영국에서도 LP가 2019년 430만 장 팔리며 12년 연속 성장세를 보였다. 다음 달쯤 미국리코딩산업협회의 2019 연간 통계를 기다려봐야겠지만, LP 매출이 1986년 이후 처음 CD를 넘어서리라는 것이 ‘롤링스톤’ 등 현지 매체들의 전망이다. 디지털 음원을 넘어 가상현실 음반이 나오고, 아예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 이가 늘어나는 추세에서 LP 열풍은 폭풍 수준이다.
●‘빌리 아일리시도 LP로 소장해야 직성 풀려’
이제 서울 마포구의 ‘도프레코드’ ‘김밥레코즈’ 등 오프라인 음반매장들은 해리 스타일스, 빌리 아일리시, 오아시스 등의 새 LP가 나올 때마다 개장 전부터 긴 대기줄로 북새통을 이룬다. 김윤중 도프레코드 대표는 “2017년 개업 때 LP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였지만 지난해에는 40%를 넘어섰다. 매장의 최고 효자상품인 셈”이라고 했다. 이상기류는 젊은 층으로 갈수록 더 두드러진다. 10대가 교복 차림으로 와 스타일스, 아일리시의 LP를 찾는 일은 흔한 풍경이다.
매년 오프라인 음반 장터 ‘서울레코드페어’도 공동 주관하는 김밥레코즈의 김영혁 대표는 “5, 6종에 불과했던 레코드페어 독점 한정반이 지난해 50여 종에 이를 정도로 LP에 대한 공급과 수요 모두 급증했다. 2018년과 비교해도 2019년의 성장세는 말 그대로 폭발적”이라고 했다.
1982년 필립스와 소니가 개발해 상용화한 CD는 그간 음반의 상징이자 기준으로 장기 집권했다. LP 시장은 역설적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디지털 음원 서비스 성장과 함께했다. 소장하고 감상하는 기념품의 개념이 커지며 인기는 더 늘었다.
● “2020년 국내 LP 시장 600억 원대 추정”
미국과 영국에서 2010년대에 가장 많이 팔린 LP는 비틀스의 ‘Abbey Road’다. 10년간 55만8000장이 팔렸는데 그중 24만6000장이 2019년에 판매됐다. 국내 업계 일각에서는 한국 LP 시장(중고 제외) 전체 매출액을 2018년 250억 원, 지난해 400억 원, 올해 600억 원대로 추정하기도 한다. LP 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의 박종명 이사는 “인디부터 아이돌까지 다양한 제작 의뢰가 밀려든다”고 말했다.
이 추세라면 2020년대는 LP가 음반 판매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용산구 ‘바이닐앤플라스틱’은 LP에 주력을 두는데 2018년 17%, 2019년 31%의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예스24’는 2017년부터 매년 60~70%에 달하는 폭발적 LP 판매 증가를 보이고 있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는 “커다란 재킷이 만족감을 주며 아티스트가 구현하려는 음악세계가 커버 아트에 담겨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등이 LP 구입의 큰 동인일 것”이라면서 “사운드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 휴대용 턴테이블, 컬러 바이닐을 오히려 구매자들이 선호한다는 점도 실용성보다 정서적 효과가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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