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출신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가 왜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렸을까요? 그가 내세운 현대건축의 5원칙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건축물의 형태를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그가 밝힌 현대건축의 5원칙 중의 하나가 ‘수평띠 창’(La fen¤tre en bandeaux)입니다. 현대의 대부분의 건축물의 유리창은 대부분 가로로 긴 띠모양으로 된 창문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세의 고성이나 성당에서는 세로로 긴 수직창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1929년 ‘빌라 사보아’(Villa Savoye)를 지었을 때 건물의 사면을 둘러싼 수평으로 길게 연결된 창문은 당시로서는 경악할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철근 콘크리트 혁명으로 가능하게 된 현대건축물의 수평지붕, 수평창은 무거움을 벗어던진 세련되고 날렵한 선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철근 콘크리트가 나오기 전의 건축물에서 지붕이나 창문은 뾰족한 모양이거나 아치형태였습니다. 벽돌이나 흙을 쌓아서 짓는 건축물에서 위는 무겁고, 아래가 뚫려 있는 문이나 창문 등이 수평일 경우 하중 때문에 무너져 내리기 쉽기 때문이죠.
활이나 무지개처럼 가운데가 높고 굽은 모양의 아치구조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위에서 누르는 힘을 잘 버티기 때문에 창문, 문, 다리와 터널 등에 활용됐습니다. 조선시대에도 ‘홍예교’(虹霓橋)로 불린 아치형 돌다리가 세워졌습니다. 전남 순천시 승주군 선암사 앞 계곡에는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승선교가 놓여 있습니다. 돌이 물 위에 떠 있는 듯 신비한 모습입니다. 홍예교 가운데 있는 홍예종석은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돼 계곡을 향해 튀어나와 있습니다. 다리 아래로 홍예교의 반원이 물에 잠긴 그림자가 되어 위의 홍예교와 하나의 원을 이루어 그저 감탄스러운 자태를 뽐냅니다.
지난달 경상북도 문경새재길을 걷다가 조령1관문 보수공사 현장을 봤습니다. 아치형 문을 새로 쌓기 위해 반원형 나무틀을 세워놓은 것을 볼 수 있더군요. 아치를 쌓을 때는 나무로 아치형태를 만들어놓고 쐐기 모양의 돌을 차곡차곡 맞대어 곡선모양으로 쌓아올립니다. 마지막 가장 높은 꼭대기 부분에 머릿돌인 종석(宗石)을 꼭 맞춰 끼워야 아치구조가 튼튼하게 완성됩니다. 이렇게 되면 밑에 있던 나무틀을 빼내어도 돌끼리 서로 맞대어 공중에 떠 있는 신기한 건축물이 탄생하는 것이죠.
이 때 가장 높은 곳에 끼워지는 종석을 영어로는 ‘키스톤(Key-stone)’이라고 부릅니다. 키스톤은 양쪽에 쌓아올려진 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상부에서 가해지는 하중을 양쪽으로 분산시켜 땅에 닿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돌입니다. 그래서 키스톤을 빼낸다면 아치구조는 단번에 와르르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야구에서도 내야수비의 핵심인 유격수와 2루수를 ‘키스톤 콤비’라고 부릅니다. 야구장의 반원형 내야의 가장 중앙 꼭대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비에 구멍이 뚫리면 내야가 와르르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재능있는 유격수와 2루수가 콤비를 이뤄 더블플레이를 완성하는 장면은 늘 탄성을 자아냅니다. 키스톤은 아치형 구조물에서 가장 중요한 돌이기 때문에 다른 돌보다 더 크고, 화려한 장식이 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를 산책하면서 보면 현대도시에도 아치형 구조물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근대문화재 건축물 뿐 아니라 현대건축물에도 미적인 감각을 살려서 아치형으로 짓기도 하죠. 가끔씩 길을 걷다가 아치형 구조물을 만나면 키스톤을 찾아서 사진을 찍는 것도 흥미로운 도시 산책법입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의 홍예의 정중앙에 설치된 홍예종석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용이 조각돼 있습니다. 이 홍예종석은 주변의 새하얀 돌들과는 좀 다른 누런 돌로 돼 있습니다. 광화문을 보수하면서 기존 부재를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이죠. 성북구 안암동에 있는 고려대의 양쪽 정문 아치에는 이 학교의 상징인 ‘호랑이’ 모양이 조각된 종석이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파리와 로마에 있는 개선문, 다리의 아치 한가운데에는 화려한 조각장식이 돼 있는 키스톤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건물에는 아치형태의 창문 틀마다 흰색 종석이 박혀 있습니다. 옛 서울역사에 있는 창문에는 다른 돌보다 훨씬 커다란 흰색 키스톤이 박혀 있죠.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근대 건축물인 두 건물에서 흰색 종석은 레드와 화이트로 포인트를 주는 디자인적인 의미를 더합니다.
키스톤은 건축물의 전체 구조를 연결하고, 힘을 지탱해주는 가장 마지막 돌이자 정체성을 상징하는 돌입니다. 각 사람에게도 온 몸을 지탱해주고, 통일된 내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영혼의 키스톤이 있을 겁니다. 이 키스톤이 빠져나간다면 우리 몸과 마음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내 영혼의 키스톤은 무엇일까. 마지막까지 나를 나답게 하고, 나를 지탱해주는 최후의 요소는 무엇일까. 이를 고민하고 찾아보는 것도 새해의 성찰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내 영혼의 키스톤을 발견했다면 잘 간직하고, 반짝반짝 빛나도록 매일매일 닦아주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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