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끌고 가는 메가트렌드 콘텐츠가 사라진다”(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 “흐름이 없는 게 흐름이다”(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새로운 10년을 맞는 2020년의 출판(문학)계를 규정할 굵직한 트렌드를 출판인들은 호명하기 꺼려했다. 미래를 확신하기 어려워서라기보다 독자의 관심과 기호와 취향이 다양하고 좁아지고 깊어지고 있어서다. 천변만화하는 독자의 마음을 감지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로 따라가는 일이 관건이다. 각개약진, 백가쟁명이다. 그럼에도 입을 모으는 키워드는 ‘나(我)’다. 나의 취향 성장 생존 성찰 경험이 올해 출판계의 화두다.
○ ‘나’에 초점, 다양성의 폭발
2018년 출판된 책의 종수(種數)는 전년보다 약 1만 종 늘었다. 독자의 선택 폭이 넓어졌고 그만큼 독자가 공감하는 영역이 세분화됐다. 짧고 무궁무진한 내용을 대량생산하는 유튜브처럼 ‘다양성의 폭발’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 배경에 ‘나’가 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독자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를 주축으로 한 20, 30, 40대 독자는 자신(나)의 문화적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들은 보편과 범용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구체적으로 ‘나’와 직접 연결되는 것을 원하며 그런 답이 제대로 큐레이션 된 책을 원한다.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키며 생존과 성장에 도움 되는 책을 바란다. 이 흐름은 에세이와 교양서(실용서)로 나타난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최근 강세를 보인 에세이 흐름이 이어져 더 다양하고 많은 에세이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대적으로 세대적으로 위로와 공감이라는 코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얘기다. 분량과 문장은 짧아진다.
사람에 대한 관심도 달라진다.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기존 에세이가 권위자나 성공담 위주였다면 이제는 삶을 대하는 다양한 방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험이 중요해진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내가 이런 경험을 했다’는 전문직, 독특한 체험을 한 사람들의 통찰력 담긴 경험이 특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내가 아는 지식이 진짜 지식일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답을 요약, 정리해주는 교양서 유행은 지속된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처럼 파편화된 독자의 니즈를 간단한 지식 전달로 채워주는 방식은 실효성이 높다. 50대 이상에게 철학책이 정통 대중교양서였다면 지금은 독자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풀어주고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독자들이 ‘펭수’와 ‘빨간 머리 앤’ 등에서 자신의 욕망을 투사할 대상을 찾았다면 그런 캐릭터 출판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학원 대표는 “저자를 따라 책을 읽는 시대는 지났다. 책 속 인물을 시대의 캐릭터로, 나의 캐릭터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나’에게서 벗어나는 흐름은 없을까.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너무 자기애(愛)적인 책은 개인에게는 만족스러울 수 있지만 사회 총합으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고 했다. 장은수 대표는 “일상에 대한 성찰적 지혜를 추구하는 독자는 토마 피케티, 빌 게이츠, 버락 오바마같이 가치를 잃지 않는 저자의 책을 읽고 싶어 한다”고 전망했다.
○ 중견 작가의 복귀 혹은 부활
문학은 젊은 여성 작가의 시대가 공고해지리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상술 문학동네 국내문학1팀 팀장은 “여성소설은 유행이 아니라 확고한 것이 됐다”고 했고, 이근혜 문학과지성 주간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표현했다.
페미니즘, 불평등, 젠더, 소수자같이 그동안 조명받지 못하던 이슈들이 고민과 공감의 대상이 됐고 이에 밀착한 여성 작가들에게 각광이 이어진다는 것. 황혜숙 창비 출판1본부장은 “그 세대가 공감하는 감성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저자에게 열광한다”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가 새 작품집을 내놓는 등 여성 작가들 작품은 이어진다.
황석영 한강 김연수 김중혁 등 중견급 이상 작가들이 내놓을 신작에 대한 기대도 크다. 백다흠 악스트 편집장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선 굵은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초엽 작가 등의 SF소설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한계에 부딪힌 듯한 현대사회의 ‘밖’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주고 대안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철학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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