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핑퐁’과 빠른 비트…72초에 일상 담은 드라마가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3일 19시 30분




“치킨버거 세트 하나 주세요.”

“저기 손님.”

“네.”

“여기서 500원 추가하시면 ‘사이즈 업’이 가능하십니다.”

“사이즈 업이요?”

고민하던 손님의 “음… 네”라는 대답과 동시에 배경에 깔리던 우울한 멜로디는 빠른 비트로 바뀐다. 500원 더 내고 ‘감자튀김’을 ‘프렌치프라이’로 업그레이드하라며 상술을 펼치는 직원과, 이에 말리지 않으려는 손님 사이의 ‘대사 핑퐁’에 맞춰 멈춤과 재생을 반복하는 비트. 박자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다보면 어느새 3분 41초가 지나 있다.



콘텐츠 제작사 ‘72초TV’가 지난해 선보인 ‘숏폼(짧은 형식)’ 드라마 ‘dxyz’의 에피소드 ‘두 여자와 햄버거’의 일부다. 길이는 4분 남짓, 등장인물은 단 두 명의 여성. 옷 환불, 음주측정 등 사소한 일상을 소재로 한 dxyz는 지난해 국제 에미상 ‘숏폼 시리즈’ 후보에 올랐다. 72초TV의 드라마 ‘신감독의 슬기로운 사생활’이 2018년 국내 최초로 같은 부문 후보에 오른 뒤 두 번째다. 지난달 30일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만난 성지환 72초TV 대표(43)는 “리드미컬한 전개, 내레이션 위주의 대사, 일상의 소재”를 72초TV의 색깔로 꼽았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성 대표는 “평생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고민하던 중 수학공식이 아닌 콘텐츠에서 길을 찾았다. 공연 기획사 ‘인더비(In the B)’를 차려 실험적인 콘텐츠를 제작하던 성 대표는 2014년 말 72초TV를 만들었다. 프랑스 숏폼 드라마 ‘bref’에서 영감을 얻어 1~2분짜리 영상을 찍은 게 시작이었다. “그 땐 ‘숏폼’이라는 단어도 없었어요. 짧은 디지털 콘텐츠가 뜨겠다 싶어 무작정 찍기 시작했죠.”

영상을 올리자 국내외 콘텐츠 업체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수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콘텐츠를 플랫폼에 유통하거나, 콘텐츠에 광고를 붙여야 했지만 둘 다 어려웠다. 3분짜리 영상에 15초 광고가 붙을 리 없었다. 콘텐츠 자체가 돈이 되기도 힘들었다. 지난 1년은 콘텐츠와 수익모델 간 연결고리를 찾는 시간이었다. “살아남으려면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해요.”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아이 참, 김 대리.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시키는 일, 다 할 거야? 일의 우선순위가 있어야지.’ ‘대체 불가능한 것’을 설명하던 성 대표가 들려줄 게 있다며 휴대폰에서 파일 하나를 재생하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악 같죠? 드라마에요. 음원으로 들어도 재밌을만한 숏폼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어요.” 30대 회사원의 일상을 소재로 한 대사 내내 비트가 깔려 랩처럼 들렸다. 숏폼 콘텐츠가 전무하던 2014년 72초 드라마를 만들었던 성 대표는 또 한 번 세상에 없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



72초TV만의 색깔을 구축해온 성과가 서서히 나오고 있다. 72초TV는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숏폼 시트콤을 제작하는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각색, 연출, 편집 등 제작 전 과정을 72초TV가 맡는다. “이곳과 협업한다는 사실만으로 회사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에요.” 이르면 올해 말 72초TV의 이름을 단 숏폼 시트콤이 세계 시장에 나온다. 영화, 드라마 등으로 기업을 광고하는 ‘브랜디드(Branded) 콘텐츠’ 제작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국내 한 기업과 드라마 형식의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해 연간 방영하는 계약도 맺었다. 성 대표는 향후 브랜디드 콘텐츠가 광고 시장을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때는 72초다웠는데 지금은 아닌 것.’ 성 대표가 가장 경계하는 점이다. “모든 콘텐츠는 식상해지기 마련이에요. 끊임없이 콘텐츠와 포맷을 바꿔가는 것. 그게 72초TV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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