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차별 깨는 무대조차 장애인 홀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5일 03시 00분


美 청각장애 한인 크리스틴 선 김씨, 슈퍼볼 개막식서 수화 공연 화제
“장애인 투쟁 보여주려 수락했는데 TV로 방송된건 몇 초 불과해 실망”

2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하드록 스타디움에서 열린 ‘슈퍼볼’ 개막식에서 한국계 청각장애인 예술가 크리스틴 선 김 씨가 수화로 공연을 하고 있다. 크리스틴 선 김 씨 인스타그램(@chrisunkim)
2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하드록 스타디움에서 열린 ‘슈퍼볼’ 개막식에서 한국계 청각장애인 예술가 크리스틴 선 김 씨가 수화로 공연을 하고 있다. 크리스틴 선 김 씨 인스타그램(@chrisunkim)
“슈퍼볼 무대에 서서 자랑스러웠지만 실망도 컸습니다.”

2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하드록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미식축구리그(NFL) 결승전 ‘슈퍼볼’ 개막식 무대에 선 한국계 청각장애인 예술가 크리스틴 선 김 씨(40)의 소감이다. 그는 전 세계 약 10억 명이 시청한 슈퍼볼 개막식에서 유명 가수 데미 러바토가 미 국가(國歌)를 부를 때 옆에서 가사를 수화(手話)로 표현하는 공연을 펼쳤다. 그는 슈퍼볼에 등장한 수화 공연자 중 최초의 아시아계다.

선천적 청각장애인이지만 소리를 활용하는 예술가로 유명한 김 씨는 3일 뉴욕타임스(NYT)에 ‘슈퍼볼 무대에 섰지만 당신은 나를 못 봤을지도 모른다’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애국심, 장애인의 투쟁을 보여주기 위해 공연을 수락했지만 기쁨과 좌절이 함께했다. 공연이 몇 초만 TV로 방송됐기 때문”이라고 썼다. 방송 화면의 대부분은 경기장의 선수들을 비추는 데 쓰였다. 그는 “매우 실망했다. 장애인의 투쟁을 보여줄 기회를 놓쳐 화가 났다”고 거듭 아쉬움을 표했다.

청각장애인이자 유색인종으로 겪는 어려움도 토로했다. 그는 “장애로 겪어야 했던 국가 보건서비스의 제약, 고용 단절 등이 유색인종에게는 더 불리하게 작용했다. 슈퍼볼 같은 장소에서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우리의 권리도 사라진다. 이번 공연이 장애에 대한 사회의 낙인 및 구조적 장벽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출신인 김 씨는 로체스터공대,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를 졸업했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면서 음악, 언어, 수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중국 상하이 비엔날레, 미 뉴욕현대미술관 등에도 작품을 전시했다. 유튜브에서 그의 슈퍼볼 수화 공연을 찾아볼 수 있다.

올해 슈퍼볼에는 문화, 인종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공연이 유달리 많았다. 경기 중간 휴식시간 공연 때는 사상 최초로 두 명의 라틴계 여성 가수가 등장했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후손인 제니퍼 로페즈(51), 콜롬비아 태생이며 레바논계 부친을 둔 샤키라(43)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에 반기라도 드는 듯 노래 중간에 라틴 및 아랍계 문화에 관한 각종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크리스틴 선 김#수화 공연#청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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