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라, 니 생긴 건 나를 쏙 뺐는데 성깔은 진경일 닮었고, 샐샐 눈웃음칠 때 보면 이쁜 것이 지영이 갸가 배서 났나 싶고, 맴씨 큼직허니 밥하는 거 보면 또 형민가 선영인가 긴가민가허고. 에이 시벌, 알 게 뭐냐! 닌 내 거시기여! 내 씨여, 내 씨!”
엄마가 누구냐는 질문에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대답이람! 유치하고 엉뚱한 아빠는 똥구멍으로 나를 낳았다고 밤낮 우겨댄다.
어쨌거나 나는 아빠의 화실에서 자랐다.
화실 구석방 아기침대에서 울었고, 학생들 정물화 그리라고 둔 사과도 집어먹고, 첫 키스도 아그리파 석고상과 했다. 아빠도 함께 자랐다. 다락방에서 책과 씨름하던 법관지망생에서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남자로 자랐고 또 덜컥 공무원이 되더니 이젠 집안일엔 손도 까딱 않는 못된 가부장으로 자랐다.
이 세상에 아이가 오려면 두 사람이 필요한데 왜 세상에는 미혼모만 있고 미혼부는 없을까. 무슨 이유에서건 아이를 혼자 기르는 아버지가 분명히 있기는 할 텐데 세상이 그들을 미혼부라고 딱 꼬집어 부르지 않는 것이 얄미워서 최예지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청년기에 몸을 막 굴리고(!) 방탕하게 놀아난 대가로(!) 개고생하는(!) 남자를 보고 싶다는 다소 못되고 나쁜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 속 아버지에게 그만 정이 들어버렸다.
불확실한 세상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자기한테 주어진 몫을 흔쾌히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그것이 행복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이 사랑스러운 소설은 그렇게 태어났다.
작가 최예지는 201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같은 해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애비로드’는 최예지의 첫 소설집으로, 모두 7편의 소설이 실렸다. 네이버 그라폴리오 인기 작가 살구가 모두 열네 컷의 그림을 그렸다. 소설과 일러스트의 컬래버레이션을 추구하는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작가 소개
최예지
언제나 뻔한 사람. 198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같은 해 현진건문학상을 받았다. 인스타그램 @yeahman_king
살구
본명 이은지.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는 소년 소녀의 감성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1988년 광주에서 태어나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나의 순결한 행성’을 연재한 뒤 출간했다. 인스타그램 @salgulu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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