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식탐이 많던 나는 음식물을 보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들어 배가 터지도록 먹고는 했나 보다. 허겁지겁 음식을 먹고 있는 나를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얘야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하시며 우려하는 눈으로 내 등을 두드려 주시고는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배가 살살 아파오더니 탈이 났다.
밤새 내 옆에 계시던 어머니는 연신 배를 문지르셨다.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끝이 수세미같이 까끌까끌해도 왠지 좋았다. 요동치던 배 속은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동글동글 주술을 행하듯 원을 그리는 엄마의 손에 어느덧 잠잠해졌다. 흥얼거리는 자장가를 더한 치료를 받은 배는 실없는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숨어들어 시큼한 냄새를 온 가족에게 공유시키곤 했다.
엄마를 차지한 밤은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런 밤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고 다음 날 아침 멀건 흰죽은 아픈 나만의 특권이어서 좋았다. 흰죽으로 배를 채우고 아랫목을 다시 파고든다. 배를 쭉 깔고 다시 아픈 것처럼 혀 짧은 소리로 응석을 부린다. 가끔 떠오르는 어릴 적 그 풍경 속, 꽤 좋았던 내 연기가 실소를 머금게 한다. 밤새 엄마는 안절부절못했을 거라는, 잠을 쫓느라 힘들었을 거라는, 그런 건 까마득히 몰랐다.
마디를 구부릴 때마다 아파하시는 꼬부라진 손끝을 조물조물 누르며 잠들고 싶은 밤이다. 어릴 적 나처럼 작아져 새우잠이 드신 엄마 손을 잡아 본다. 형제자매가 여럿인 우리에게 사랑을 분배해 주려니 분신술이라도 가지셔야 했을…. 그 후로 다른 형제도 돌아가며 배앓이를 했고 돌림병처럼 아픈 증세를 호소해 입을 삐죽 내밀고 흰죽을 아기 새처럼 얄밉게 받아먹었다. 엄마의 손엔 분명 다른 처방전이 있었던 건지, 사는 내내 우리들은 잎이 푸른 나무로 자라는 자양분이 부족하지 않았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다지 손을 내밀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바삐 사느라 찌푸린 미간을 볼 새가 없었던 건지, 툴툴대는 말투가 부족한 애정에서 나오는 건 아닌지, 문을 크게 닫으며 들어간 방에서 혼자 배앓이를 한 건 아닌지….
“뭐야!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덥석 늦은 밤 들어오는 아들 녀석을 와락 끌어안아 본다. ‘기생충’ 영화에 캐스팅될 만한 어린 날 내 연기력보다 그날 밤 알면서도 신의 경지에 오른 연기를 해주신 어머니. 이제야 인생이 보인다는 구순의 어머니. 엄마! 나도 이제 조금씩 보이는 거 같아요. 받은 자양분을 조금씩 꺼내 놓으며 재연배우처럼 엄마가 되어 가고 있네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