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음, 첫 발자국]세모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4일 03시 00분


아버지는 올해 결혼 30주년을 맞으셨다. 아버지의 주사(酒邪)는 말이 길어지는 것인데, 문제는 매번 같은 얘기란 것이다. 고로 어머니는 같은 얘기를 30년째 듣고 계시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아버지는 신혼 초부터 퇴사를 꿈꿨다고 한다. 술에 취하면 당장 다음 날 사직서를 낼 것처럼 소리치지만 막상 다음 날 아버지 품에서 나오는 건 술값이 찍힌 영수증뿐이었다. 40년 가까이 같은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는 여전히 회사에 다닐지 말지 고민하신다. 그렇다. 정년퇴임을 2년 앞둔 아버지는 아직도 퇴사를 꿈꾼다.

한 선배는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거듭하고 말했다. 퇴사는 입사의 어머니다. 이십대 후반에 들어서자 주변에서는 입사 소식만큼 퇴사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누군가는 요즘 젊은이들이 인내심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들은 분명 간절히 직장을 다니고 싶어 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하고도 회사를 그만두는 데는 저임금과 야근, 직장 내 괴롭힘뿐만 아니라 믿을 수 없는 별별 이유가 있다.

나는 이달을 마지막으로 첫 번째 회사를 그만둔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공무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대신 아버지의 평생소원인 퇴사를 내가 먼저 이루게 되었다.

짧은 직장 생활을 마치며 깨달은 것은 회사는 세모난 바퀴로 굴러간다는 것이다. ‘네모의 꿈’이란 노래에는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라는 가사가 나온다. 네모 정도면 그래도 다행이다. 물론 바퀴가 오각형, 육각형쯤 되는 회사도 있겠지만 아마도 추측하건대 동그란 바퀴를 가진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운전대를 쥔 사람은 빨리 달리기만을 바란다. 놀랍게도 바퀴가 어떤 모양이든 회사는 굴러간다. 몇몇의 지극한 희생과 노고로. 무슨 일이든 쉬운 일이야 없겠지만 정말이지 세모를 굴리는 일은 쉽지 않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외로움과 열패감에 휩싸일 때 나는 종종 아버지를 떠올린다. 스무 살이 되어 덜컥 글을 쓰겠다고 선언한 나에게 아버지는 첫 번째 지지자이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셨다. 아버지가 그토록 고민하고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던 이유에는 나의 이기적인 결정들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는 아버지에게 퇴직 후에 무얼 할 건지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게도 익숙한 장면이다. 대학은 어디에 갈 건지, 취업은 어디로 할 건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그래서 나는 출근하기 싫은 아버지의 응원군이 되기로 한다. 아버지의 퇴사를 누구보다 기쁘게 기다리며.
 
조지민 2020신춘문예 희곡 당선자
#세모의 꿈#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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