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총리공관 맞은편 골목길. 고영성(40) 이성범(41) 소장의 포머티브건축사사무소를 처음 방문한 사람은 자칫 길을 잃기 쉽다. 기와 올린 한옥 나무문을 어렵게 찾아 들어가면 마당 한편 댓돌 주변에 신발들이 느런히 놓여 있다. ㄷ자 한옥 공간을 채운 컴퓨터와 건물모형 앞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직원들의 신발이다.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화가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란 이 소장은 “고층건물 빼곡한 서울 강남에 가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업무공간의 정취가 구성원들의 감성에 전하는 여유로움이 은연중에 작업 결과물에 스며들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부산 산복도로 아래 다가구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 소장도 “거미줄 같은 골목을 뛰어가 대문을 열면 마당 너머 먼 바다가 확 다가오는 집이었다. 옥상에서 친구들과 자주 텐트를 쳤다. 공간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깨칠 수 있었다”고 했다.
사무소가 한옥이니 점잖고 고풍 충만한 공간을 추구할까. 정반대다. 대학원 스튜디오에서 만난 인연으로 2016년 함께 사무소를 낸 두 사람의 지향점은 ‘유쾌하고 발랄하고 재미있는 건축’이다. 지난달 시작한 유튜브 채널 ‘포머티V’를 잠깐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시공현장 감리 기록이나 건축주와의 인터뷰 영상도 있지만 ‘사무소 경영은 흑자니?’처럼 노골적인 화제를 만담 주고받듯 엮어낸 영상도 있다.
“건축을 이야기하면서 현학적인 어휘를 최대한 배제하려 한다. 학문적인 영역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건축은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영위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설계와 시공 과정 외에 다양한 신변잡기 사연을 공유하려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러다보니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통해 설계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도 적잖다.”
하지만 ‘재미난 건축’을 도모하는 그들이 빚어내는 결과물에 경박함의 기색은 없다. 여럿 앞에서 튀지 않으려고 삼가고 조심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은근하게 돋보이는 사람을 닮은 공간이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의 스테이 삼달오름, 제주시 구좌읍의 더스테어 모두 군더더기 장식 없이 묵직하고 명쾌하게 분할한 덩어리 공간을 조잡한 재료를 쓰지 않고 깔끔하게 마감한 건물들이다.
“지루함 없이 오래도록 계속 보게 되는 독특하고 또렷한 조형미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그 과정에서 그 안에 머무르며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완벽한 기능성을 갖춘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을 유지하며 작업한다. 덧붙이지 않고 솎아내 꼭 필요한 것만 남겨놓는 게 디자인이라고 믿는 가치관을 공유한다. 조형적인(formative) 요소는 빈 공간으로만 표현하고, 디테일은 눈이 아닌 몸으로 느끼도록 감춰놓는 거다.”
토지에 길게 접한 직선도로변에 전남에서 가져온 대나무로 반투명 스크린을 걸어놓은 서귀포시 안덕면 주택 벽락재, 소실점을 끌어모으는 듯한 이미지의 진입부를 낸 제주시 조천읍 주택 연북정연가 등에서 그들이 딱딱 잘라내듯 다듬어낸 간명한 조형성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처음 고택을 개조해 좋은 반응을 얻은 뒤로 작업이 줄줄이 이어져 제주도에서만 건물 40여 채를 설계했다.
“지은 지 200년 넘었다는 돌집이었다. 그때만 해도 싹 허물고 새로 짓는 추세였는데 옛집 공간의 흔적을 최대한 살려내는 방식을 택했다. ‘낡아서 흐려졌던 가치를 되살려낸 공간이어서 다시 찾아오고 싶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고영성 소장:: 2010년 한양대 건축대학원 석사 2010∼2011년 솔토건축사사무소 2012∼2014년 디자인연구소 이엑스에이 대표
::이성범 소장:: 2009년 한양대 건축대학원 석사 2009∼2012년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2019년 광주건축대전 초대작가(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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