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치사율 56% 괴질보다 경관을 두려워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8일 11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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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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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지금부터 딱 100년 전에도 호역(虎疫) 또는 호열자(虎列刺)라 불린 괴질(怪疾)이 한반도를 강타했습니다. 바로 콜레라였죠. 이 감염병으로 1920년에만 2만4229명의 환자가 나왔고, 그 중 1만356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치사율이 56%에 달했으니 그 공포가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우리 조선 사람들은 괴질도 무섭지만 그보다 보균자를 마구잡이로 잡아다 격리 수용한 일본인 경관이 더 싫고 두려웠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처럼 정확한 검사를 하지도 않은 채 괴질로 의심되면 서울 옥인동에 있던 피병원(避病院·격리병원) 순화원에 수용했는데 환자들이 꽉꽉 들어찼을 뿐 아니라 사망자를 오랫동안 방치하기도 해 오히려 병에 걸리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화원 갈 놈’이라는 욕도 나돌았다고 하네요.
동아일보 1920년 8월 7일자 3면. 쩍 벌린 호랑이 입에 서울이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그려 ‘호역’으로 불린 괴질로 공포에 질린 당시의 분위기를 묘사했다.
동아일보 1920년 8월 7일자 3면. 쩍 벌린 호랑이 입에 서울이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그려 ‘호역’으로 불린 괴질로 공포에 질린 당시의 분위기를 묘사했다.

괴질 의심환자를 순화원에 끌고 가려는 경관에 대한 저항은 거셌습니다. 8월 16일에는 서울 종로에서 보균자로 의심되는 최영택(47)을 들것에 태워가려는 경관들을 군중 1000여 명이 막아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최 씨가 “멀쩡한 사람을 왜 몹쓸 들것에 담아 가려느냐”면서 버티자 이를 지켜보던 군중들이 “성한 사람을 잡아다 괴질 구혈에 넣는 원수를 때려죽여라”며 충돌한 것이죠. 최 씨가 진짜 보균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죠. 당시 서울에는 “아무런 병도 없이 해산하는 여자를 피병원에 넣었다”, “경관이 병자를 발견하면 한 사람당 5원을 준다”는 등의 풍설도 파다했습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동아일보는 괴질의 발생, 확산 상황의 단순 보도에 그치지 않고 민족을 대변하는 임무에 충실했습니다.
1920년 8월 12일자 동아일보 3면에 실린 김동성 기자의 한 컷 만화. 호랑이로 상징되는 괴질에 쫓기는 사람들이 “예방주사를 맞았다면…”이라고 하는 말풍선을 통해 감염병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1920년 8월 12일자 동아일보 3면에 실린 김동성 기자의 한 컷 만화. 호랑이로 상징되는 괴질에 쫓기는 사람들이 “예방주사를 맞았다면…”이라고 하는 말풍선을 통해 감염병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8월 21일자 사설 ‘괴질의 유행과 당국의 방역’은 시민들이 괴질의 공포에 떨면서도 병균을 몰아내려는 경관을 병균보다 혐오하며, 사회를 위해 활동한다는 경관을 뱀이나 전갈보다 밉게 보고 있다며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했지요. 하나는 방역조치에 관한 대국민 홍보가 부족했고 방향도 잘못됐다는 것, 다른 하나는 방역 일선에 선 경관들의 무단적, 압박적 태도를 지적한 겁니다. 특히 총독부 당국이 괴질 유행의 책임을 조선인의 빈약한 위생관념과 격리병원 수용을 꺼리는 어리석음으로 돌리는 데 대해 “유럽 문명국과 달리 일본에서도 매년 괴질이 만연하는 것을 보면 오십보백보”라고 시원하게 꾸짖었습니다. 사설은 나아가 모든 면에 경관 주재소를 둔 조선총독부를 향해 “주재소보다 의료기관이 더 많아야 한다”며 “거액의 예산을 들여 민중을 위해 시행하는 방역이 거꾸로 인민의 불평과 분통, 원한을 사는 것이 총독부의 정치인가”라고 다그쳤습니다.

이 외에도 동아일보는 괴질 창궐에 즈음해 여러 이슈를 앞장서 제기했습니다. 7월 7, 8, 20일자 ‘망상의 경성 수도(水道)’ 3회 기획 시리즈에서는 위생에 필수적인 물이 부족한 실태와 당국자의 무개념, 무책임을 비판한 뒤 무분별한 물 사용을 막기 위해 사설(私設) 수도전에 계량기를 달고 요금도 누진제로 고칠 것 등의 구체적 대책을 제안했습니다. 8월 17일자부터 나흘 동안은 ‘죽음! 죽음의 위협이 닥쳤다, 민간 피병원을 세우자’라는 제목으로 격리병원 증설운동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사는 괴질이 창궐한 1920년 무료 예방주사 활동을 폈다. 본사가 초청한 의사들이 8월 10일 수해에 이어 괴질까지 덮친 서울 뚝섬의 주민들에게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사는 괴질이 창궐한 1920년 무료 예방주사 활동을 폈다. 본사가 초청한 의사들이 8월 10일 수해에 이어 괴질까지 덮친 서울 뚝섬의 주민들에게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7월 30일자 1면 사설 ‘호역 발생에 임하야 조선민중의 건강을 논함’은 “호군(虎軍·호역 부대)이 오고 있으니 각자 무기를 들어 일어나라”고 호소하며 개개인이 지켜야 할 6가지 ‘무기’를 열거했습니다. 즉 ①난잡한 음식을 피하고 끓여 먹어라 ②집, 식기 등을 청결히 해 전염의 매개물로부터 보호하라 ③인체가 해이해지지 않도록 처신에 조심하라 ④방역관의 주의를 지키며, 의학적 상식을 기르라 ⑤호군의 침범을 당했을 때는 신속히 소독해 전파를 막고, 단결하며 도우라 ⑥개인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 아니니 군(郡), 도(道), 나아가 조선 전부를 보호하겠다는 각오를 하라 입니다. 지금도 새겨들을 대목이 많습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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