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매 맞는 ‘제제’에게서 울고 있는 나를 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9일 03시 00분


[그때 그 베스트셀러]1986년 종합베스트셀러 3위(교보문고 기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J M 바스콘셀로스 지음·박동원 옮김·김효진 그림/301쪽·1만 원·동녘

김소연 시인
김소연 시인
조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1968년 브라질에서 출간돼 전 세계의 언어로 고루 번역돼 드넓게 사랑받은 성장소설이다. 한국어로는 1976년에 처음 발간됐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하다가 ‘제제’의 이야기가 소문을 타고 나서 천천히 베스트셀러가 돼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낯설던 포르투갈어권 문학작품이어서 더욱 이례적이었다.

주인공 제제, 제제에게 다정했던 아저씨 포르뚜가, 제제가 항상 위로를 받던 오렌지나무 밍기뉴. 이 고유명사들을 모르는 청소년은 당시에 거의 없었을 정도로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았다. 영화나 연극으로 각색된 것은 물론 헌정 음악앨범까지 등장했다. 제제를 모티브로 한 숱한 창작물이 여전히 드문드문 발표되는 것을 보면 우리 성장기를 대변해주는 이야기로 아직까지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세대를 거듭하면서도 청소년들이 주인공 제제에게 자신을 투사하는 것은 당연히 기성세대로부터 발생되는 폭력과 억압 때문일 것이다. 고작 다섯 살인 제제는 매 맞는 아이였다. 제제의 관점에서 서술된 이야기에 신파적 요소는 절제돼 있다. 오히려 어린 제제가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을 성숙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이 담담한 진술방식이 성장기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더 제제와 동일시하며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 힘일 것이다.

형 또또까, 포르뚜가 아저씨, 밍기뉴와 제제가 나누는 대화가 무엇보다 압권이다. 어떤 면에서는 사실적이기 그지없고 어떤 면에서는 서정적이기 그지없다. ‘천사같이 순수한 아이’라는 낭만적 시선 바깥에서 제제의 성격이 구성돼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누군가는 가난하고 억압된 환경에서도 꿋꿋하고 해맑은 제제를 사랑했고 그런 제제를 허물없이 아끼고 사랑해준 포르뚜가 아저씨를 사랑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한 그루쯤 살아 있을 나무 밍기뉴를 사랑했다. 숱한 상처와 상실감에 대해 인생을 배운 것으로 다정하게 마무리 짓는 마지막 챕터의 회고에서 작가의 체험과 다분히 겹치는 실감을 누군가는 사랑하기도 했다.

이렇듯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소설을 읽는 독자가 성장서사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요소를 촘촘하게 이야기로 채우고 있다.

바스콘셀로스는 브라질에서 가장 사랑받은 작가였다. 그의 문학적 성과는 브라질 현대문학에 새로운 분기점을 세운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포르투갈인 아버지와 인디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몸으로 삶을 배운 작가였다. 권투 선수 스파링 상대, 농장 인부, 어부, 초등학교 교사 등을 지냈고, 인디언들과 사막에서 함께 살기도 했으며, 숱한 작품을 출간한 뒤에는 영화와 텔레비전 배우로도 활동했다. 그는 일찍이 1984년 64세로 작고했다.

김소연 시인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j m 바스콘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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