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출을 자제하니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일이자 취미인 사람으로서 요즘은 일상의 금단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 이럴 때 그동안 감동을 준 맛집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나의 맛집 평가 기준은 음식, 사람, 분위기의 삼박자다. 음식은 메뉴 상품, 사람은 누가 요리하는지에 중점을 두며, 분위기는 음식에 어울리는 식당의 느낌을 말한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시절은 지금의 코로나19 못지않게 전 국민이 힘들었다. 이번 달부터 월급이 50% 삭감된다는 통보를 받던 날도 생각난다. 그나마도 자리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서울 관악구 ‘우리가참순대’의 이규엽 사장도 그때가 제일 어려운 시절이었단다. 식구는 많고 일할 곳은 없어져 시작한 것이 순대였다. 봉천동 쑥고개에 테이블 몇 개 있던 작은 식당은 그의 신의를 높이 산 지인들이 쌈짓돈을 보태 마련했다. 절박함 속에서 순대 만들기를 연습하고 자신의 순대를 주변에 맛보이며 그렇게 식당 순대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직업상 식당 오너들을 많이 만나서 역경의 스토리를 꽤 들어왔다. 성공한 이들은 과거 겪은 경험을 무용담처럼 말하곤 하는데, 몇십 년 변함없이 초심을 이어오는 이가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사장은 반도체 기술자처럼 정밀하게 순대를 분석하며 테스트해 왔다. 그리고 제주의 식재료에서 자신의 해답을 찾았다. 그는 순대와 수육에 사용하는 돼지고기는 오로지 제주산만을 고집한다.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돌았을 때 그는 촌음을 다퉈 제주도에 내려가 돼지머리 90두를 원료로 확보했다. 돼지의 소창으로 만드는 순대에는 당면은 들어가지 않고 시래기, 찹쌀, 멥쌀, 파, 마늘, 견과류, 고추를 비롯해 21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이 집의 수육 또한 돼지머리 전문가의 연구 결과물이다. 흔히 고사를 지내거나 잔칫집에서 볼 수 있는 편육은 누른 돼지머리 고기를 말한다. 하지만 이 사장은 돼지머리를 그냥 눌러 사용하면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부위까지 들어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하나 깨끗이 손질해 부위별로 가지런히 썰어 수육을 차려 낸다. 돼지머리의 볼때기안살, 볼때기바깥살, 혀, 귓살, 귀옆볼살이 연잎에 폭 싸여 김이 오르는 채로 나온다. 돼지머리 부위의 장단점을 제대로 알고 만든 ‘정성 수육’이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쌓인 순대 업(業)에 딸과 사위, 아들까지 합세했다. 특히 아들은 아버지의 돼지머리 발골(拔骨) 실력과 순대 배합을 배워 순대 공장을 든든하게 책임지고 있다.
이 집에 들어서면 간혹 대학생이 된 듯하다. 그만큼 고객들이 젊다. 학생들을 배려해 밥은 무한 리필이다. 김치와 깍두기는 국내산으로 직접 담근다. 가격도 꽤 착하다. 요즘 코로나19로 여럿이 가기 어렵다면 혼자 가도 후회 없을 든든한 밥집이다.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 우리가참순대=서울 관악구 관악로 148, 02-883-1063, 참순대국 6000원, 연잎제주수육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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