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의 메인 화면. 공개 영상이나 서비스 가격은 저작권, 데이터 접근성 등에 따라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북미, 북유럽의 이용료가 가장 높다. 한국도 가격이 비싼 편이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거주지는 한국, ‘인터넷주소(IP주소)지’는 인도, 아르헨티나, 미국, 일본…?
인터넷상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남들보다 더 싸게, 더 먼저 콘텐츠를 즐기려는 ‘콘텐츠 유목민’이 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에 서비스하는 유튜브,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국가별 가격, 콘텐츠 공개 범위, 공개 시점에 차이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유목민들은 실제 거주지와 상관없이 IP주소를 옮겨가며 영상, 게임, 음악 콘텐츠를 소비한다.
IP주소 우회 애플리케이션. 일본, 미국, 베트남 등 이용 가능한 가상 주소지를 설정할 수 있다. EasyOvpn 캡처대학생 송모 씨(23)의 IP주소지는 인도 뉴델리다. 그는 최근 광고 없이 영상을 볼 수 있는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를 싸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가상사설망(VPN)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뒤 서비스 비용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인도로 IP주소를 옮기고 현지 통화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실제 국내에서 8690원(부가세 포함)인 월정액 이용료는 인도에서 약 2100원(129루피)으로 떨어진다. 6명까지 사용 가능한 ‘가족 요금제’로 결제하면 1인당 약 500원에 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송 씨는 “약관상 안 되는 행동인 데다 번거롭지만 더 싸게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용료가 저렴한 아르헨티나 등도 ‘각광’을 받고 있다.
IP주소를 인도로 우회해 이용할 경우 나타나는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 결제 화면. 국내에서 월 8690원인 이용료는 약 2100원(129루피)까지 낮아진다. 유튜브 캡처이처럼 국가마다 차이가 나는 것은 이용료가 각국의 광고 단가, 동영상 수익구조, 물가 수준을 고려해 책정되기 때문이다. 해당 국가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OTT 업체 간 저가 경쟁도 이용료 인하 요인으로 작용한다.
남보다 일찍 본다는 만족감도 콘텐츠 유목민을 유인한다. 직장인 이모 씨(34)는 넷플릭스를 켜기 전 매번 IP주소지를 일본으로 옮긴다. 이용료에는 큰 차이가 없어도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일본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먼저 볼 수 있어서다. 일부 콘텐츠는 한국 페이지에도 공개되지만 다른 이용자보다 더 빨리 최신 해외 콘텐츠를 시청하는 쾌감을 즐긴다. 이 씨는 “해외 콘텐츠가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를 거쳐 국내에 공개되려면 최소 2, 3주 더 걸린다. 실시간으로 따끈따끈한 콘텐츠를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콘텐츠 유목민은 영상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서비스하지 않는 게임이나 음원 서비스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박모 씨(33)는 “제작사에 따라 한국에 서비스를 하지 않더라도 내용만 좋다면 인터넷 국경을 뛰어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IP주소지 변경은 더 정확한 검색 결과를 찾으려는 사람이나 외국어 학습을 위해 현지어 콘텐츠를 찾는 이에게도 유용한 수단이 된다. 역으로 한국의 콘텐츠에 갈증을 느끼는 해외 거주자들도 IP주소지를 한국으로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IP주소지 변경은 약관을 위배하는 편법이나 사기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튜브 측은 유료 서비스 약관에 ‘사용자는 국가를 허위 기재하지 않고, 액세스 제한을 우회하는 시도를 하지 않기로 동의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위배한 사례를 적발하면 계정을 차단하는 ‘접근 제한 조치’를 취한다. 결제금액 손실 등 불이익도 따른다. 넷플릭스도 저작권을 이유로 우회 접속을 허용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편법임은 분명하지만 ‘콘텐츠 국경’이 점차 희미해지는 시대에 수억 명의 소비자를 일괄 제재하기는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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