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가짜가 넘치는 시대, 가치를 가려내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7일 03시 00분


◇편집가가 하는 일/피터 지나 외 엮음·박중서 옮김/552쪽·2만2800원·열린책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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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가르칠 수 없는 특성이 세 가지 있는데, 이것이 없으면 훌륭한 편집가로 기능할 수 없다. 그것은 판단, 취향, 그리고 공감이다.”

이 책은 ‘책에 관한 책’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책 만들기에 관한 책’이다.

책 만들기도 기본적인 얼개는 다른 생산품과 다르지 않다. 원재료를 확보하고, 일정한 공정을 거쳐 완성품으로 만들며, 그 뒤 마케팅이 이뤄진다. 이 모든 과정에 개입하는 사람이 편집가(Editor)다. 이름만으로는 중간 생산 과정만을 책임지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과정의 지식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편집자가 아니라 편집‘가’인가. 책 ‘편집’이 지식과 감각과 경험을 총동원하는 일이며 전문성과 헌신이 반드시 요구되므로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가(家)’를 호칭에 넣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번역자는 말한다.

미국 출판계에서 활동해온 편집가 27명의 글이 이 한 권에 모였다. ‘원재료 수급’에 해당하는 ‘확보(기획 및 섭외)’, ‘생산’에 해당하는 ‘편집’, ‘마케팅’에 해당하는 ‘발행’까지가 앞쪽 절반을 차지하고, 소설 아동서 전기 학술서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체득한 세부를 설명한다.

편집가는 기본적으로 중간에 선 존재다. 저자를 상대로 독자를, 독자를 상대로 저자를 대변한다. 때로는 저자에 대한 사랑이 그를 맹목으로 이끈다. 자기 집까지 집필 공간으로 제공했다가 필자를 경쟁사에 빼앗긴 편집가의 일화는 웃고만 넘어가기 힘들다. 적절한 거리는 필수다. 그럼에도 발행 부분을 맡은 한 저자는 ‘편집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을 끌어들일 만한 확신을 품어야 한다는 뜻이다.

책 시장에서 얕볼 만한 분야란 없다. 어린이책 편집가로 오래 활동해온 한 저자는 이 분야에서도 ‘독자를 얕잡아보거나 저자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이 실패한다’고 말한다. ‘도판(圖版)’ 서적 분야를 맡은 저자가 ‘나도 이 원고 마감을 한 달이나 넘겼다’고 고백하는 데는 웃음이 피식 나온다.

이 ‘책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보통의 독자도 읽어야 할까. 책을 사랑하는 독서가들에게도 그 산물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분명 이 신비로운 제품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단, 수많은 저자가 각자의 조언과 경험담을 쏟아 놓는 만큼 상당한 정도 내용의 중복은 피하기 힘들다. 이 책 원서의 편집가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오늘날 개인 콘텐츠의 시대가 심화되고 있다. 앞으로 편집가의 역할은 줄어들까. ‘변화하는 출판계에서 편집가의 역할’ 장을 맡은 저자는 ‘자기 출판의 성장이 편집에 대한 필요를 오히려 증대시킬 것’이라고 내다본다. 콘텐츠의 숫자가 폭발할수록 시간을 소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가려 보려는 독자도 더욱 늘어나며, 이에 따라 전문적인 편집자가 콘텐츠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낼 필요도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편집가가 하는 일#피터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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