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그의 연기상 수상 소식에 곳곳에서 축하 인사가 잇따랐다. 지인 가운데 일부는 데뷔 34년 차 배우 강지은(53)이 “상을 늦게 받은 것 아니냐”고 했다. 동료들의 농담 섞인 반응은 상을 받을 만한 이가 드디어 수상했다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1987년 연극 ‘비’로 데뷔해 30년 넘게 줄곧 연극 무대를 지킨 강지은을 서울 종로구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5일 만났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상에 너무 기뻤다. 연극 준비 작업만으로도 힘들 때가 많은데 ‘연극하느라 애쓴다’고 상을 받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감칠맛 나게 표현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연극 ‘여름은 덥고 겨울은 길다’에서 맡은 어머니 배역이 호평을 받아 수상으로 이어졌다. 희생하는 전통적 어머니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고 가정을 보듬으며 생명력과 희망까지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작 ‘해방의 서울’에서는 시대에 굴복한 친일 배우 ‘지화정’을 매력적으로 그렸다. ‘철가방 추적 작전’에서는 비행 청소년을 몸소 뒤쫓는 교사 ‘봉순자’로 변신했다. 그는 “사람이 모여서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게 연극이다. 보는 사람들이 멀게 느끼는 남 얘기가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에 눈길이 가고 욕심이 난다”고 했다.
그는 박근형 연출가의 최근 작품에 모두 출연할 정도로 박 연출가의 극단 골목길과 ‘케미’가 좋다. 그는 “배우, 연출가 등 단원 모두가 연기, 표현력을 포착하는 능력이 빨라 서로 신뢰한다”고 했다. 박 연출가가 직접 집필한 작품에서 보여주는 정확한 지향점도 그가 골목길을 선호하는 이유다.
강지은은 2002년부터 서울시극단에서 10년 넘게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원하는 작품과 역할보다는 고전 희곡 작품이 먼저였다. 답답한 유럽풍 드레스를 자주 입어 힘들 때도 있었고, 연극에 대한 근본적인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틀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그는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지금, 여기의 얘기가 고팠다”고 했다.
강지은은 요즘 고등학생 시절을 종종 떠올린다. “설명할 수 없는 울렁이는 마음”만 안고 김포공항 인근 집에서부터 버스를 탔다. 무대가 펼쳐지는 광화문 마당세실극장과 대학로 소극장을 찾았다.
“그 시절 암전된 무대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설렜어요.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좋았던 제 초심을 돌아보고 나이를 더 먹어도 거침없이 연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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