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타인의 손을 읽는다. 습관을 따라 굽은 관절들과 바짝 짧게 깎은 손톱,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흉터나 점 같은 것들을 무심결에 관찰한다. 특별한 의도 없이도 보게 되고 읽게 된다. 어디에서든 맥락을 찾고 서사를 구축하려는 습관 때문일 수도 있고 시선에 닿는 모든 것을 읽고자 하는 충동 때문일 수도 있다.
이야기를 찾는 자에게는 이야기가 보인다. 어쩌면 작가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그 이야기들을 목격하고 제일 먼저 감동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정직한 경험이 배어난 타인의 손에도 나름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계절에 따라 생장 속도를 달리하면서 짙고 옅은 나이테가 만들어지듯 사람의 손 또한 고통과 환희의 기억을 제 몸에 각인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지문처럼 그가 겪어 낸 인생의 소용돌이를 독특한 문양으로 갈무리한다. 그래서인지 마냥 멀끔하게 흰 손, 맷맷한 손에는 별반 감흥이 일지 않는다. 견디고 살아낸 자의 애수는 물론 어떤 노동의 흔적도 읽혀지지 않아 영 떨떠름할 뿐이다.
언젠가 ‘작가 일흔일곱의 풍경’(한영희 지음·열화당·2001년)이라는 사진집에서 고인이 된 소설가 박경리의 손을 본 적이 있다. 사진 속의 선생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소녀처럼 웃고 있었다. 그 무구한 웃음과 신산한 손의 결이 사뭇 달라서 어쩐지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등과 마디마디 관절이 불거진 손가락들. 그 모두가 아이를 기르고 밥을 짓고 책을 쓰고 밭을 일구었던 한 생의 훈장이자 자취였다.
누군가의 인생이 궁금하다면 상대의 손을 가만히 지켜보라. 이를테면 지금 내 눈높이에는 검은 비닐봉투를 쥔 한 노인의 손이 걸려 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나보다 두어 계단쯤 위에 선 노인. 그는 자꾸 아래로 처지는 봉투 속 무엇인가의 무게를 저승꽃 가득한 손으로 단단히 추어올린다. 그것은 몇 년 전, 이사를 하면서 보았던 한 청년의 손을 떠올리게 했다. 줄곧 쾌활한 농담을 던지던 청년은 엄지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손으로 낡은 냉장고를 번쩍 들어 옮겼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변주되는 인간의 자리에 다양한 표정을 지닌 손이 있다. 한때 나는 그에 가까이 다가가거나 멀리 달아나려는 뒷걸음질로 속절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즈음 내가 반한 손들에는 그에 비해 한없이 담담하면서도 애틋한 그 무엇이 있다. 한 사람의 삶이 오롯하게 내려앉아 자신을 스스로 증거하는 손. 나는 그 손들이 안간힘을 다해 살아온 시간들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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